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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8 18:24 수정 : 2019.03.18 19:08

정기석
마을연구소장·<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저자

‘농민수당’의 깃발이 전국의 농촌마다 펄럭이고 있다. 전남의 강진, 해남을 필두로, 전북의 고창, 경북의 봉화, 충남의 부여, 경기도의 여주, 양평에 이르기까지. 선도적이고 주체적인 농민회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나서 농민수당의 조례를 속속 제정, 시행하고 있다.

농민수당은 엄밀히 따지면 농민 기본소득은 아니다. 기본소득은 6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사회구성원으로서 시민권을 가진 누구나 받을 권리가 있는 ‘보편성’부터 지켜야 한다. 자산이나 소득이 많든 적든, 노동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지급하는 ‘무조건성’도 준수해야 한다. 또 개인마다 수급자격을 주는 개별성, 주기적으로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하게 지급하는 정기성, 현물이 아닌 현금으로 주는 현금성도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소득보전 효과를 발휘할 정도의 금액을 지급하는 충분성도 필요하다.

그런데 농민수당은 아직 몇가지 조건을 미처 갖추지 못한 상태다. 개별 농민이 아닌 농가 단위로 지급하기 때문에 개별성을 위반하고 있다. 또 연간 50만~60만원 정도로 낮은 금액을 책정해 충분성에도 어긋난다. 철학적 기반을 살펴봐도 사회수당에 가깝다. ‘사회수당’이란 아동, 노인, 청년 등 특정 인구학적 집단의 생애주기 욕구에 기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시민권에 기반을 둔 기본소득과는 다르다. ‘수당’이라는 용어 자체도 다소 적정하지 않게 들린다. 애초 수당의 사전적 정의는 ‘정해진 급여 외에 특별한 사유에 따라 정기적이거나 수시로 지급되는 보수’를 뜻한다. 농민수당은 ‘정해진 급여’는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기반, 농정철학이 다소 불안정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는 그렇다.

농민 기본소득은 이처럼 지자체 차원에서 특별히 챙겨주는 시혜적, 정치적 성격의 수당 지급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국가기간산업인 농업과 국가식량기지이자 생명창고인 농촌을 지키고 있는 공익요원 ‘농민’에게 국가에서 ‘기본급’을 지급하라는 당당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농민수당이 무의미하거나 의의가 작다고 폄하할 수는 없다. 농민 기본소득으로 전진하는 물꼬를 트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성, 보편성의 원칙을 제한적이나마 내포하고 있으며, 농민 개인별로 현금 월 50만원 수준을 지급하자는 제안으로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 충분성의 원칙도 어느 정도 견지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합리적 농업과는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합리적 농업은 자본주의 체제와는 양립 불가능(설령 자본주의 체제가 농업에 있어서 기술발전을 촉진시켰다고 해도)하다. 합리적인 농업에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밭을 경작하는 소규모 농민 또는 연합한 생산자들을 관리해 가는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공화국으로>에서 ‘자본주의적 농업’을 극복하는 ‘합리적인 농업’의 길을 이렇게 제시한다. 여기서 ‘합리적 농업’은 오늘날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적 상업농, 기업농, 스마트농의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농민 기본소득’ 정도의 근본적인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합리적인 농업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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