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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5 16:32 수정 : 2019.03.25 18:45

코사인-100 검출기가 설치돼 있는 양양 양수발전소 안 지하실험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코사인-100 검출기가 설치돼 있는 양양 양수발전소 안 지하실험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산골집 창 너머 저편 언덕의 잣나무는 늘 푸르고 우뚝하다. 그 잣나무 뒤쪽 능선 바로 너머로 양수댐이 들어설 수도 있단다. 양수댐이라고? 상부댐과 하부댐, 그 둘을 연결하는 수 킬로미터의 터널과 발전소를 짓는, 9천억원도 넘는 사업이라니 산을 깎고 임야와 계곡을 훼손하는 초대형 토목공사는 불 보듯 뻔하다.

나랏돈으로 가꾼 장군봉 선도 산림경영단지, 갖가지 토종식물과 봉화 송이가 있고, 수달과 담비가 넘나드는 곳. 이름도 시적인 외씨버선길과 오지탐험가들이 아끼는 낙동정맥 트레일이 만나는 이 고즈넉한 골짜기가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 그뿐이랴. 난데없는 물벼락에 피해지역 주민들의 마음은 이미 갈가리 찢어졌다.

절차가 음험하고 몰상식하다. 시행처인 한국수력원자력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경북 봉화군을 포함한 8개 후보지를 선정하여 공개한 것이 지난 1월, 대상 지자체가 유치를 신청하면 그중 3개 부지를 확정한단다. 8개 후보지 모두 수몰지역이 생기는데도 고작 4개월의 기한을 주며 “주민 자율유치”로 신청하라는 시행처도 어이없지만, 이 “건설사업을 반드시 유치하겠다”는 설명문을 피해주민에게 태연하게 건네는 군의 무례함이라니! 정든 땅을 떠나야 하는 수몰지역 주민들과 수백만톤의 물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상부댐 인근 주민들의 고통은 안중에 없고, 도리어 그 고통을 담보로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원을 만들겠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내가 참석한 세차례의 피해지역 주민 설명회에 군수님은 오지 않았다.

신청하든 안 하든, 선정되든 안 되든, 찬반으로 갈려 서로를 비난하는 주민들의 갈등을 어떻게 치유할까? 이런 갈등이 지금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자체와 피해주민, 그리고 피해주민과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는 지역주민 간에 갈등이 이어진다. 정작 원인을 제공한 시행처는 자신이 던져놓은 미끼를 향해 몰려오는 물고기들을 뒷짐 지고 구경하는 행태다.

얼마 전 수몰 예정지에서 시행처의 설명회가 있었다. 그들은 주민들의 반대로 신청을 포기한 하동군을 쏙 빼고 애당초 7개 부지를 선정한 듯이 말했다. 설명회 내내 주민들의 뼈아픈 지적과 항의가 이어졌다. 서글픈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그곳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차창을 뚫고 들려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농촌에서 학교가 사라지는 지금, 이곳 아이들은 그 옛날 나처럼 친구들과 뛰놀며 깔깔대고 웃는 거였다. 이 학교가 사라진다니! 이곳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에 나도 몰래 주먹이 쥐어졌다. 더욱이 이 골짜기에는 산양도 온다지 않는가.

양수발전소가 꼭 필요하다면 시행처는 항공사진 대신 발품을 팔아 사람이 살지 않고 최소의 환경파괴가 일어날 곳을 찾으시라. 기본계획을 입안하는 분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대안을 고민하시고, 해당 지자체는 피해주민의 말을 경청하시라. 나는 사과나무를 정성껏 돌보리라. 난데없이 에너지 공부를 한다며 법석이니 우리집 강아지가 웃을 일이다. 농부는 농사지을 때 가장 행복한 법 아닌가.

강분석
농민·경북 봉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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