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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3 17:39 수정 : 2019.04.04 14:10

양창모
가정의학과 전문의·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 회원

암이었다. 내시경 할 때도 혹시나 했는데 조직검사 결과는 역시 암이었다. 환자에게 전화를 해서 알렸다. 그는 다음날 일찌감치 병원을 찾아왔다. “조직검사 결과가 위암입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고 입은 바짝 말라 있다. 암이란 그런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 뿌리째 뽑히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런 암이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방사능’ 관련 학부모 설명회장에서다.

요즘 춘천 시민들은 불안하다. 생활공간의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세계보건기구 기준 약 120nSv/hr)의 서너배를 웃돌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더 불안하다. 최근 방송된 <제이티비시>(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교실 내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의 다섯배 이상 나온 학교가 모두 춘천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책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이 때문에 강원도교육청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생활방사능안전센터장이 강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한 학부모의 질문이 있었다. “최근 스위스에서는 200nSv/hr 이상에 노출된 아이들의 백혈병 위험성이 두배 이상 증가되었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가 한 대답의 취지는 이랬다. “10만명 중에 한명 걸리는 암의 발생률이 두배 이상 증가한다고 해도 10만명 중에 서너명인데 일상생활에서는 그걸 체감하긴 어려우니 괜찮다. 그리고 암 발생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서 연구의 재현성이 부족하니 저선량 방사능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못 내린 상황이다.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

그의 대답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설사 암 발생률이 연구마다 일관되게 증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향적으로 많은 연구들이 발생률의 증가를 보고하고 있다. 일례로 핵발전소에서 근무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에서도 방사선 노출량에 비례해서 암 발생률은 증가했다. 당연히 정책 입안자의 입장에서는 그 가능성에 대해 예방적 태도를 취하는 게 맞다.

전문가는 최면술사가 아니라 위험을 예견하고 먼저 조치를 취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학부모들에게 안심하라고 최면을 걸기에 바빴다. “저에게 일본 후쿠시마 근처에 가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습니다. 방사능으로 땅값 떨어지면 제가 그 땅을 사겠습니다”라는 그의 얘기를 듣다가 화가 난 일부 학부모들은 중도에 설명회장을 나가버렸다. 춘천시내 학교의 교실 내 방사능을 전수조사하겠다고 약속했던 강원도교육청은 설명회 이후 결국 그 약속을 파기하고 더 이상의 조처는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암을 통보받고 진료실을 나가는 분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늘 안타깝다. 단지 춘천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혈액암에 걸려서 진료실을 나가는 아이의 등을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단 한명이라도 그런 아이가 생긴다면 그것을 누가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진료실에 앉아 있는 나는 그런 상황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얘기하진 못하겠고 그런 상황을 별거 아닌 것처럼 치부하는 이가 안전을 관리하는 책임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일이 끔찍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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