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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7 17:54 수정 : 2019.04.18 10:06

김철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환경노동위원장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부터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줄여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신규 고용을 창출해서 전체 민간 소비를 확대하는 노동시간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최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기존의 정책과 역행하고 있다.

이렇게 된 첫번째 이유는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논란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애초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노동자 소득이 증가하고 고용까지 늘어나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저소득층인 1분위와 2분위 가구 소득이 감소했고, 지난해 취업자 증가폭도 9만7천명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정부는 본래 의도와 다른 결과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주 52시간 초과근로 금지 정책의 계도기간이 끝났을 때의 상황도 우려했을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경제상황의 악화다. 최근 몇년간 나 홀로 호황을 보이던 미국 경제가 침체의 기미를 보이고 있고 세계 경제 전망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하향 조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현상까지 일어나 경제위기를 전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위기에 앞서 선제적으로 친기업적 행보를 주문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당이 총선 국면으로 전환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총선이 1년 남은 시점에서 정부도 초기의 뚝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미 대형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방침을 발표했고 앞으로도 친기업적인 보따리를 줄줄이 풀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에서 친기업적 노동시간 정책으로 전환하자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우선 우리나라 노동조건은 더 이상 악화될 여지도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강도를 이미 최대한으로 올려놨고 이것이 현재까지 표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노동시간이 현저하게 길다. 아직 주 52시간 초과근로 금지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고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0%도 되지 못한다. 또한 노동자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미 취업자 중 40~50대의 비중이 제일 크며 50대와 60살 이상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노동조건을 악화시켜 기업의 실적을 올리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이지 않다.

기업의 구인난도 심화시킬 수 있다. 탄력근로제가 확대 시행되면 업무자율성이 떨어지고 직무 스트레스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간호사 직군은 불규칙한 근무 일정으로 업무자율성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직군이다. 전문직인데도 면허 소지자의 절반이 취업하지 않고 있다. 이미 2017년 기준으로 민간부문 임금 일자리 가운데 재직기간 3년 미만이 65.4%나 될 정도로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심각한 상황이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시행은 이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정부의 또 다른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98명이다. 우리나라는 국가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다. 노동자가 자기 혼자 먹고살기도 힘들어 자녀를 기를 여력이 없는 것이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노동조건이 ‘출산파업’을 부르고 이는 다시 경제에 악영향을 주면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자 노동소득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이며 노동자가 앞으로의 삶이 나아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던 것이다. 위기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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