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2 17:54
수정 : 2019.04.22 18:47
합계출산율 0.98명! 세계사적으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진정 우리나라의 결혼, 출산 및 양육 환경이 전통보수적인 가족문화가 강한 남유럽 국가들이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한 동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국가 중 최악의 상황인가?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0위권으로 비교적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복지 수준이 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다. 흔히 우리나라의 저출산 원인으로 고용 불안, 주택마련 곤란, 자녀양육비 부담, 돌봄서비스 미흡, 일-생활 균형 곤란, 낮은 양성평등 수준 등이 지적되고 있지만, 그래도 출산율이 0.98명으로까지 낮아질 정도인가? 어쩌면 사회·경제적인 이유나 문화적인 이유를 훨씬 초월하는 것으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고 있거나 심지어 무관심해지는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출산 수준도 매우 낮지만 미래 전망도 매우 비관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출산율은 단순한 인구학적인 지표라기보다 현재의 삶의 수준이나 가치관을 대변해주며, 일정한 시차를 두고 사회경제 영역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일종의 ‘방아쇠’ 구실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0.98명’을 벗어나기 위해 삶의 질 개선이 중요하며, 이와 동시에 ‘0.98명’ 이후의 미래 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초저출산 현상이 영향을 끼칠 돌봄, 교육, 병력, 노동, 노후 사회보장, 지역 등 전 영역에서 대응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우선 영·유아 감소에 대응하여 돌봄 영역에서는 어린이집·유치원·아이돌보미에 대한 수급 균형을 이루기 위해 소지역별 맞춤형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야 한다. 시설당 적정 영아 수를 유지하여 운영의 영세화를 피하는 동시에 사회화 등 아동발달에 지장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폐합에 따라 영아들의 원거리 이동을 최대한 방지하고, 이동안전시스템을 더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학교 구조조정은 인위적이고 급진적인 방식보다 자연감소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조조정으로 유발되는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적(통학·통근·하숙), 물리적(이동거리 연장), 정신적 희생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방인력 감소와 관련해선 중장기적으로 부분모병제를 도입하여 전투병은 의무제로, 전문기술병은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해서는 잠재 유휴인력(청년·여성·고령자 등)의 노동시장 유인을 극대화하여 노동력 부족이 심화된 시기에는 주력 노동력으로서 구실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업기, 육아기, 노년기 등 전 생애주기에 걸쳐 일-생활 균형이 보편화되도록 사회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 발전이 노동력 수급 균형에 핵심적인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관련 인력을 적극적으로 배양할 필요가 있다.
노인인구 증가에 대응하여 사회체질을 고령친화적으로 개편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주거·교통·공공시설 등 고령화 관련 인프라의 지역별 수급균형 및 질적 개선이 중요하다. 고령화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접목을 활성화하여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고령산업의 고도화가 시급하다.
아울러 지역의 인구공동화 현상에 대응한 과제로는, 인구희소지역에서 고령자의 고립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보호지역 설정, 기초적인 생필품과 복지·의료서비스 공급체계 구축 등이 긴요하다. 이를 위해 현행 시·군·구나 읍·면·동 경계를 초월하는 실질적인 공동생활권역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대응 노력은 저출산 현상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사후적 대안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대응의 결과는 새로운 기회로 긍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즉 삶의 질이 더욱 높아질 것이며, 그로 인해 출산율이 안정적인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고령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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