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4 16:16
수정 : 2019.04.2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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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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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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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학교육의 특징을 말하라고 하면 높은 성취도와 낮은 흥미도로 요약된다. 언뜻 보기에는 이 두 결과는 서로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둘은 스파르타식 훈련과 이에 따른 낙오자 발생이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수학교육의 본질은 대니얼 카너먼이 말하는 ‘느린 사고’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데 있다. 또 수학은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공학(technology)이다. 따라서 수학교육의 목적은 문제 해결을 통해 느린 사고를 함양시키는 데 있다. 그런데 기술공학을 다루는 직종은 일반적으로 전문성 제고와 실수를 줄이기 위한 영역 특성에 맞춘 수련 과정을 제공해 숙련을 기대하고 있다. 수학에서 숙련이란 문제의 유형에 따른 해결 방법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음을 말하며 단순히 해결 과정의 속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수학교육도 숙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한 문제를 3~4분 이내에 풀어야 할 급박한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문제풀이를 수행하려면, 학생들은 문제를 보는 즉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수학의 기술공학적 특성과 현행 수학능력검사와 같이 창의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평범한 수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라면 숙련은 그렇게 부적절한 전략이 아니다. 실제로 높은 수학성취도는 숙련의 결과다. 학생의 이런 노력을 뒷받침해주기 위하여 학교는 다양한 형태의 숙련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선행학습과 방과후 학습, 속진학습, 문제지를 통한 별도의 학습 등은 숙련을 위한 시간 획득 전략이고 심지어 최근에 유행하는 거꾸로 수업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사교육은 본질적으로 숙련을 돕는 거대 시장이다. 교과서에 따른 문제집이 독자적으로 있는 나라는 세계에 몇개 없는 독특한 문화다. 그러면 숙련이 가지는 문제점이 무엇일까?
맹목적인 숙련이 되면 일반 학생뿐만 아니라 특히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도 수학을 규칙과 공식의 암기 교과로 오해할 가능성이 생긴다. 특히 사고력보다 지식 중심의 학습을 통해 높은 수학성취도를 얻은 학생은 자신이 가진 지식의 틀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른바 ‘전문가의 역설’ 현상이 생기게 된다. 너무 많은 지식의 습득은 창의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창의성 교육에서도 지나친 지식 중심 교육을 경고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현행 평가가 실수에 대한 책임을 심각하게 묻는다는 점이다. 단 한번의 실수로 인생의 방향을 바꿀 정도라면 그게 시험인가 징벌인가? 우수한 학생도 실수를 하지만 현행 입시제도는 우수한 학생과 평범한 학생을 실수라는 잣대로 변별한다. 그러니 장래를 보장받는 학생이 되려면 실수로부터의 탈출이 최우선 전략이며 이쯤 되면 숙련을 욕할 수 없게 한다. 또 우리 교육 현황을 보면 ‘대학 입학=대학 졸업’이란 등식이 고착돼 있고 과거에 비하여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좋은 학벌은 자산이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장래가 결정되고 그게 숙련도로 평가된다면 누가 숙련을 버릴까?
이런 문제점이 있는데도 숙련 중심의 학습을 선호하게 된 이유는 즉각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고질적인 평가 방식과 이에 근거를 둔 입시 정책에 있다.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교육당국이 원한 환경에 적응했을 뿐이고 교사는 그 제도에 최적화된 전략으로 학생들을 도왔을 뿐이며 사교육 시장은 지금의 교육제도에 최적화된 산물이다. 이게 잘못된 학습 전략이라면 그 책임은 학생과 교사가 아니라 교육당국이고 여기에 학부모의 낡은 생각도 거들고 있다. 수학교육은 교실의 문제임에도 사회문제가 된 것은 당국이 문제를 방관했기 때문이다.
유윤재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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