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교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나면서 공약 이행 여부가 관심사다. 과학기술 분야 공약인 “기초연구 지원 확대”와 함께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조성”은 단순히 연구비 지원을 늘리는 것을 넘어 과학기술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어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실제 연구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미미하다. 실질적 이행이 미흡한 원인을 짚어본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정부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수준과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기획 사업을 만들며 예산을 증액하면서 여러 문제가 야기됐다. 연구 사업을 기획할 만한 전문성을 지닌 공무원을 확보하지 않은 채 부처 공무원이 연구자들과 협업해서 새 사업을 만드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예산 확보를 위해 기재부 심사를 통과하려면 무조건 경제적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대규모 사업을 기획함으로써 연구비를 확보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구자들이 생겨나면서 연구자는 연구를 열심히 잘하면 된다는 상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연구자들의 자율적 연구를 지원하는 기초연구 사업은 제자리걸음했고, 대학은 연구비가 끊긴 실험실이 속출하는 빙하기를 맞았다. 이렇게 연구개발 투자 확대가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기보다 건전한 과학기술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아이러니에 처해 과학기술인의 서명운동이 일어났었다. 정부가 청원 내용을 받아들여 기초연구 사업을 2조5천억원까지 확대하는 구체적 계획을 국정과제에 명시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은 다행이다. 하지만 증액되는 예산이 중구난방으로 투입된다면 지원 확대에 상응하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할까 우려된다. 연구자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연구비 규모의 단계별 구조와 과제 수를 치밀하게 계산해 투입해야 하는데, 사업 시행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가 과연 공동의 목표 아래 긴밀히 협조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연구자들이 청원을 통해 요구한 것이 단순히 연구비를 더 달라는 게 아니라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개혁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연구자들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짐은 상식이지만, 20조원에 이르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 중 자율적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선진국형 연구개발로 도약하려면 자율적 연구로도 예산 확보가 가능해야 한다. 지난해 혁신본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개선안을 내놓은 것은 제도 개혁의 첫걸음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개선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달라진 게 뭐냐는 실망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자율적 연구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때로는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목표지향적 연구를 폄하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고 기초연구와 응용개발 연구 사이의 밥그릇 싸움으로 오해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연구개발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자율적 연구는 기초연구에만 해당하고, 부처별 사업은 전부 정부가 주도하는 목표지향적 사업이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처별 사업에서도 전략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자율적인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 형태를 적극 도입하고, 수요에 기반한 목표지향적 사업은 책임성을 강화해 효율화를 도모하는 차별적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 주도의 책임 있는 목표 설정을 위해서는 연구개발 부서의 전문성 강화가 필수다. 문재인 정부가 연구개발비 20조원 시대에 걸맞은 시스템을 확립한 정부로 기록되기를 기원한다.
왜냐면 |
[왜냐면] 연구 현장에서 본 과학기술정책의 문제점 / 호원경 |
서울대 의대 교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나면서 공약 이행 여부가 관심사다. 과학기술 분야 공약인 “기초연구 지원 확대”와 함께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조성”은 단순히 연구비 지원을 늘리는 것을 넘어 과학기술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어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실제 연구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미미하다. 실질적 이행이 미흡한 원인을 짚어본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정부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수준과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기획 사업을 만들며 예산을 증액하면서 여러 문제가 야기됐다. 연구 사업을 기획할 만한 전문성을 지닌 공무원을 확보하지 않은 채 부처 공무원이 연구자들과 협업해서 새 사업을 만드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예산 확보를 위해 기재부 심사를 통과하려면 무조건 경제적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대규모 사업을 기획함으로써 연구비를 확보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구자들이 생겨나면서 연구자는 연구를 열심히 잘하면 된다는 상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연구자들의 자율적 연구를 지원하는 기초연구 사업은 제자리걸음했고, 대학은 연구비가 끊긴 실험실이 속출하는 빙하기를 맞았다. 이렇게 연구개발 투자 확대가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기보다 건전한 과학기술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아이러니에 처해 과학기술인의 서명운동이 일어났었다. 정부가 청원 내용을 받아들여 기초연구 사업을 2조5천억원까지 확대하는 구체적 계획을 국정과제에 명시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은 다행이다. 하지만 증액되는 예산이 중구난방으로 투입된다면 지원 확대에 상응하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할까 우려된다. 연구자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연구비 규모의 단계별 구조와 과제 수를 치밀하게 계산해 투입해야 하는데, 사업 시행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가 과연 공동의 목표 아래 긴밀히 협조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연구자들이 청원을 통해 요구한 것이 단순히 연구비를 더 달라는 게 아니라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개혁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연구자들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짐은 상식이지만, 20조원에 이르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 중 자율적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선진국형 연구개발로 도약하려면 자율적 연구로도 예산 확보가 가능해야 한다. 지난해 혁신본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개선안을 내놓은 것은 제도 개혁의 첫걸음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개선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달라진 게 뭐냐는 실망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자율적 연구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때로는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목표지향적 연구를 폄하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고 기초연구와 응용개발 연구 사이의 밥그릇 싸움으로 오해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연구개발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자율적 연구는 기초연구에만 해당하고, 부처별 사업은 전부 정부가 주도하는 목표지향적 사업이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처별 사업에서도 전략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자율적인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 형태를 적극 도입하고, 수요에 기반한 목표지향적 사업은 책임성을 강화해 효율화를 도모하는 차별적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 주도의 책임 있는 목표 설정을 위해서는 연구개발 부서의 전문성 강화가 필수다. 문재인 정부가 연구개발비 20조원 시대에 걸맞은 시스템을 확립한 정부로 기록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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