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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8 16:55 수정 : 2019.07.08 19:25

김용인
귀촌인·전남 화순

7년 전 전남 화순군 도곡면 한 마을에 마지막 삶터로 들어왔다. 맑은 천이 흐르고 당산나무가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정겨워 귀촌한 곳이다. 큰길에서 마을까지의 진입로 양쪽으로 논두렁이 펼쳐져 있었고 드문드문 비닐하우스들이 있었다. 조금 안쪽으로는 꽤 규모가 큰 유리온실들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다지 눈에 거슬리진 않았다. 몇 곳의 축사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점차 눈에 보이는 풍경이 삭막해져 갔다. 마을 앞 들녘이 비닐하우스 숲에 가려 없어져 갔다. 부지불식간에 비닐하우스가 들판의 절반도 넘게 파고들었던 것이다.

나는 최근 파프리카 온실을 들렀다가 깜짝 놀라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닥이 온통 콘크리트로 덮여 있고 거의 5m나 위로 솟구친 파프리카 줄기에는 가느다란 호스가 꽂혀 있었다. 논에 온실을 지어 과채류를 재배하는 것이다. 인근 토마토·딸기 시설하우스도 마찬가지였다. 땅이 아니라 공중에서 ‘배지’라고 하는 인공 토양에 모종을 심어 양액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난방용 에너지는 요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연료를 사용한다.

논에 온실을 만들어 과채류를 재배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벼농사보다도 훨씬 높은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아무리 경기에 민감하더라도 벼농사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하우스 농가의 품종도 오이·참외·수박부터 화훼까지 매우 다양했다. 정부가 1~6월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신청을 받고 있다는 펼침막도 붙어 있다. 나는 면사무소를 찾아가 담당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의무적으로 쌀을 수입해야 하는데다 국내 쌀 소비량이 줄어 쌀을 쌓아둘 창고가 부족할 지경이라고 한다. 정부가 농사직불금 등으로 입막음해온 농민들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피하려는 속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 되고 만다.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농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토착 농민이 아닌 외지인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오직 이익을 위해 여기저기 공장식 식물농장을 설립하고, 대형 축사들을 짓는다. 이젠 화훼단지와 맞닿게 축사를 건립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은 실정이다. 논에까지 축사가 지어지면 축사 분뇨 냄새는 고향 사람들끼리 서로 다툼을 불러 농촌 인심을 피폐하게 한다.

논을 다른 작물 재배지로 전화한다면 콘크리트로 덮인 땅을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 이런 발상은 우리의 식량 주권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이는 곧 논이 안고 있는 물 가두기 구실마저 포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부는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농정을 바라보아야 한다. 도시국가인 벨기에도 식량자급률이 40%가 넘기에 선진국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체질에 맞지 않는 밀가루 음식이나 육식으로는 국민들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휴경을 통한 보상을 감수하고라도 논, 다시 말해 들녘을 보존해야 한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와 더불어 춤을 추는 황금 들녘이 풍요로운 내일을 여는 열쇠라는 점을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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