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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30 17:02 수정 : 2019.09.30 19:56

왕용운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

아내와 나는 지난여름 휴가로 3살 딸을 데리고 오스트리아에 다녀왔다. 과거 풍요로웠던 이국의 역사와 문화를 딸이 직접 보고 느낀다고 생각하니 참 흐뭇했다. 매일 박물관, 궁궐 등에 다녀와서 오늘 하루 가장 좋았던 게 무엇이었는지 물어보면 딸은 이렇게 대답했다. ‘놀이터에서 모래놀이 했던 거.’ 내게도 가장 좋았던 기억은 거위가 떠다니는 호수, 그 가에 앉아서 대화하는 사람들,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니는 놀이터가 있던, 정말이지 그림 같던 공원이다.

여전히 우리 딸은 놀이터와 모래놀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딸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 때마다 내가 보기에 너무나도 불편한 모습이 있다. 공원이든 아파트 단지든 어느 놀이터에나 바닥에 깔려 있는 우레탄 포장이다. 그때마다 오스트리아 놀이터 바닥에 깔린 나무 칩과 모래놀이터 장면이 떠오른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 놀이터들은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며칠 전 모래놀이터를 찾아 ‘북서울 꿈의 숲’ 공원에 가서 딸과 함께 맨발로 즐겁게 놀고 있는데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하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흙은 만지지 말아요.” 모래놀이를 하면서 왜 흙을 만지지 말라고 하는 걸까?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 모두 신발을 신은 채 아주 소극적으로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아차,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엄마들 세계에서 모래놀이터란 중금속과 동물 배설물로 오염된 아주 더러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모래놀이터 상태 때문이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방식 때문이다. 강이나 바다 모래를 잘 말리거나 구워서 살균하면 기본적으로 깨끗한 상태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저기 다닌 신발로 그 모래를 밟으면서 점점 오염되기 시작한다. 오스트리아 모래놀이터는 아이가 앉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규칙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그 규칙을 모두 잘 지킨다. 동물 배설물도 걱정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걱정이 된다면 천막으로 덮개를 만들어 비가 오거나 저녁이 되면 덮어놓으면 되는 일이다. 주기적으로 모래를 뒤집어주면 자연 살균도 된다. 그러면 그걸 누가 관리하느냐고? 그래 사실은 이것이 문제였다. 필요와 방법은 알지만 관리가 귀찮아서 최선책도 차선책도 아닌 엉뚱한 결정을 해버리고 마는 태도.

지난번에 딸과 함께 공원 모래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 딸이 가진 모래놀이 도구를 보고 다른 아이들이 한명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딸은 아이들에게 하나씩 빌려주었고 어느새 주위는 친구들로 북적거렸다. 집에 갈 때에도 ‘다 놀았으면 그만 줄래?’ 하고 말하니 선뜻 내어준다. 모래놀이가 아주 좋은 점은 이런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는 점이다. 참! 국제학술지 <환경지구화학과 건강>에서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권정환 교수팀이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놀이터의 토양·먼지 속보다 바닥 겉면이 고무로 된 놀이터의 먼지 속에 유해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평균 4.3배 많이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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