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23 20:30 수정 : 2019.12.24 02:45

이세윤 ㅣ 티브로드 설치·수리기사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언제부터 본인의 인생을 선택하기 시작했는가? 중학생? 고등학생? 아니면 대학생 때나 첫 직장에 입사하고 나서? 장담하건데 대다수 사람들은 “당연히 나는 처음부터 내 인생에 대하여 선택하고 살아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왔다면 그렇게 대답했을 테니까.

그런데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당신은 정말 그리 살아왔는가? 돌아보면 나는 그리 살아오지 못했던 것 같다. 항상 누군가가 선택해준 길만을 걸어왔다. 선생님이 정해준 학교를 갔고, 회사에 취업했을 때도 나는 한 번도 내 연봉에 대하여 의사를 표출한 적이 없었다. 단지 회사에서 정해준 연봉만을 착실하게 받아왔을 뿐이었다. ‘청년 취업대란’이라 불리는 이 시대에 그저 “나를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식으로만 살아왔을 뿐.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나의 이야기를 보면서 한번쯤 다시 돌아보셨으면 한다. 나는 그리 살지 않았는가를.

■ 어, 그동안 ‘비정규직의 늪’에서 살았네?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 했던 일은 식당에서 서빙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빕스나 아웃백과 같은 대형 스테이크 프랜차이즈 정도는 아니었으나 나름 50평 크기에 분위기도 괜찮았던 가게였던 것 같다. 그곳에서 하루 12시간씩 28일을 일하면 받을 수 있던 돈은 고작 80만원. 그리고 근로계약서 같은 것은 아예 알지도 못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들으면 대부분이 알 만한 유명한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일했다. 한 달 일해서 받은 금액은 150만원. 단기 계약직으로 야간근로수당은 당연히 없었던, 비정규직이었다.

그 뒤로 마케팅 대행사에 입사했다. 한 달 일하면 받던 금액은 87만원. 아주 작은 마케팅 대행사인지라 여러 조건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입사할 때 사인한 그 계약서가 바로 비정규직 기간제 계약서였다는 것을.

택배 회사에서도 일했다. 나름 지방 출장소 중에서는 규모가 있던 곳이었다. 사무 업무를 했다. 아침 7시까지 출근해서 밤 10시~12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하면서 받았던 한 달 봉급은 160만원. 사무직이라고 하길래 정규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계약직. 즉, 비정규직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당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말도 안 되는 임금을 받았고, 과로로 사망하기 딱 좋을 만큼의 시간을 중노동 했지만, 나는 현실에 매우 감사하며 살았던 것 같다. 왜냐고? 나는 이 시대를 사는 청년이니까! 그래도 나는 이 어려운 취업대란에 푼돈이라도 버니까! 요즘 청년들이 얼마나 취업이 어려운데!

■ 정규직인 줄 알고 입사했는데….

얼마 후 나는 지인에게 티브로드를 소개받았다. 하는 일이 ‘고객님 댁에 방문해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설치, AS 하는 일’이라고 했다. 지인에게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마자 면접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것도 무려 정규직이란다. 물론 그것이 티브로드 정규직이 아니라, 티브로드 하청업체 정규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후의 일이다. 결국은 그 또한 비정규직이었다.

이번엔 임금이 어땠냐고 내게 묻는다면, 입사 당시 회사에서는 “매년 급여가 올라가니 지금은 적더라도 계속 버티면 괜찮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매년 오른다던 나의 급여는 암울하게도 무려 5년씩이나 160만원에 고정되어 있다. 그 돈 가지고 살아지냐고? 당연히 어려웠다. 그래서 모자라는 비용은 가입자를 가까스로 유치해서 받는 돈과 휴일근무나 야간근무 수당으로 메우며 살았다. 그런 것이라도 있는 달은 그나마 살 만한 편이었다. 그 꽁짓돈을 월급과 합치면, 많이 나오는 달은 그래도 190만원까지는 나왔으니까. 그것조차도 없을 때는 어김없이 눈물을 머금고 매달 붓던 적금을 털어서 생활비로 써야 했다. 대한민국 청년이란 직업은 열심히 여러모로 너무나도 극한직업이었다.

바보도 아니고, 월급 올려달라는 이야기를 왜 못 했냐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 당시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내용에 겁을 먹었다. 하루가 멀다고 뉴스나 라디오 등의 매체에서 “청년기 국민 중에서 4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취업이 안 돼서 고생 중이랍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들이 결혼을 못 한답니다”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려워서 나라가 망하게 생겼더랍니다”라는 식의 내용을 반복해서 떠들었기 때문이다. 청년 당사자인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있는데, 월급 올려달라는 말을 대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랬다가 만약 우리의 무서운 사장님께서 “너 말고 고용할 사람 많아! 나가!”라는 이야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만약 해고라도 되면 누가 지켜주기라도 한다던가? 당시 나에게 노동법은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억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백수들도 많다는데 난 그래도 일자리는 있으니’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갈 수밖에. 그리고 시간은 얄밉게도 한 해, 한 해 흘러갔다.

■ 세상에, 노동조합이 진짜 빨갱이 집단인 줄 알았어요!

2013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태동은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간부들이 지방마다 순회하며 주로 저녁시간, 주말 등을 이용해 나와 같은 기사들을 설득했다. 어느 정도로 은밀했는지 ‘노동조합 설명회’라는 것을 하는 날에야 비로소 “우리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의 나는 노동조합이 ‘이 사회를 해치는 나쁜 사람들의 집합소’쯤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따라가지 않는 것이 맞았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노동조합은 파업한다고 공장에서 일도 하지 않고, 뻑하면 데모나 하겠다며 길거리에 나오는 통에 교통체증이나 불러오고, 북한 사상에 물들어 있으며, 지금도 월급을 많이 받으면서 조금 더 받아내겠다고 돈에 환장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이기적인 집단 정도였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조합에 대해 교육하는 곳 자체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았고, 우리 부모님 역시 내게 노동조합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려준 적이 없다. 주변 어른들이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이야기 몇 마디가 내게는 사실인 것처럼 다가왔다.

어쨌든 나는 전교조 사무실에서 진행된 노조 설명회 자리에 참석했고, 그때 들었던 위원장님의 첫마디 말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환영합니다. 어떠십니까, 빨갱이 소굴에 오신 소감이? 실제로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이시나요?”라고. 노동조합을 처음 접하는 신규 조합원들의 자리이니 아마도 긴장감과 어색함을 해결하기 위해 던진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엉뚱하게도 그 말 한마디로 노동조합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꼬리표를 제거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노동조합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 30년을 살고서야 겨우 나를 알았다.

노동조합이 생겼다. 그리고 1년 차에는 나름대로 큰 성과도 있었다. 임금도 꽤 상승했고, 연장근로도 많이 줄었으며 구타도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집회 때마다 “비정규직 철폐”를 부르짖었지만, 성과물들에만 취해 만족하고 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정규직이 되면 좋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때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임금 인상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박혀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이 워낙 최저임금에 걸려있을 만큼 박한 월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6년에 알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인지를….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재계약이다. 우리 회사의 경우를 들어보겠다. 티브로드라는 원청이 A라는 하청업체와 2년 동안 계약을 한다. 그리고 일정 금액을 티브로드가 A회사에 준다. 그러면 A회사는 이 돈으로 노동자들의 임금과 자제 비용, 그리고 기타 거의 모든 제반 비용 등에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업주들은 돈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점점 줄이거나 복리후생을 줄이게 된다. 그래야 남은 돈을 자신들의 주머니에 더 많이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퇴사자가 발생해도 인원을 충원하지 않는다거나, 차량 유류비를 일정 금액 이상 쓰면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런데 큰 문제가 한 가지 더 존재한다. 노동자들이 1년 이상 근무할 경우 어느 회사든 임금이 오르기 마련인데, 원청에서 A회사에게 주는 돈이 사실상 그 정도 수위를 맞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A회사 사장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더 쥐어짜게 된다. 그래야 자신에게 작년만큼의 돈이나마 최소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원청에 더 달라는 말은 아예 하지도 못한다. 혹시라도 그랬다가 원청에서 재계약을 불발시키기라도 하면 지금 챙기던 돈마저 챙기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 재계약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이 곪고 곪아서 기어이 일이 터졌다. 2016년 안산과 광명, 전주 지역에서 재계약이 불발된 것이다. 그러면 원청인 티브로드는 해당 지역을 관리할 새로운 업체를 물색하게 된다. 그런데 새로운 업체 사장이 기존 직원들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해당 지역을 관장하던 업체는 재계약 불발로 폐업 수순을 밟았다.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 50여 명은 일순간 해고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해 초부터 약 10개월간 기나긴 해고자 복직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원청 앞에서 이루어진 집회는 당연했고, 정당에도 찾아가고, 한강대교 위에서 고공농성도 했으며, 국회 앞에서 넉 달이 넘는 노숙투쟁과 약 20일간의 단식투쟁까지도 했다. 물론 조합원들도 집회 및 투쟁에 성실하게 임했다. 그리고 그해 초겨울에 전임 간부들이 잠정합의안을 가지고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부들의 표정에 걱정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잠정합의 내용이 ‘임금 동결을 전제조건으로 한 해고자 전원 복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임금 협상에 대한 불만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리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임금 안을 가지고 옥신각신했던 조합원들이 있었으니 충분히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반전이 벌어졌다. 전임 간부들의 걱정과 초조함을 안심이라도 시키듯 압도적인 조합원들의 찬성으로 잠정합의가 가결된 것이다. 해고자들은 조인식이 이루어지고 나서 약속대로 복직되었고, 조합원들은 당연한 결정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해고자 복직 싸움을 하는 우리 동지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임금 협상 정도는 충분히 버릴 수 있다는 마음이 조합원들의 가슴속에 깊숙이 박혀있음을 확인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이 1년간의 멋진 투쟁은 우리 모두를 멋지게 바꿔내는 것에 성공했다. 나는 그보다 더 큰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직도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이며, 우리가 어떤 싸움을 해 나가야 하는지를.

가자, 에스케이(SK)로!

2019년 티브로드를 에스케이에서 인수 합병하기로 했다. 혹자는 말한다. 에스케이로 합병되면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우리에게 진짜 실체는 ‘우리 회사가 또다시 바뀐다’는 것이다. 아마도 교섭에서 힘들게 애써서 타결한 근속수당도 없어질 테고, 대출을 한 번 받을 때도 또다시 신규 입사자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에게 이것은 두 번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비정규직의 첫 번째 숙제는 고용보장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계약해지가 될 수 있는 힘없는 존재들이 우리이므로.

우리와 함께 비정규직 투쟁을 하던 형제 노조들이 있다. 에스케이 브로드밴드 비정규직노조, 엘지유플러스(LG U+) 비정규직노조, 딜라이브 비정규직노조와 다산 콜센터, 경기도 콜센터.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어냈다. 작게는 자회사 전환부터 크게는 직접고용 쟁취까지.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충분히 잘 싸운다. 그 힘으로 에스케이 브로드밴드에 회사가 합병되더라도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싸워갈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며, 숙명일 테니까.

※편집자주: 아래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가 공동주최한 ‘2019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의 대상 수상작입니다. <한겨레> 오피니언면의 ’왜냐면’ 코너에 게재됐습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