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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30 18:20 수정 : 2019.12.31 02:38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한겨레> 자료사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한겨레> 자료사진

미국에서 모국을 바라본다. 한국의 포털사이트에 접속할 때면 성 소수자(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동성애자를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의 주범이라고 비난하는 문장을 마주할 때면, 약 40년 전 미국에서 에이즈를 ‘게이 관련 면역결핍증’(GRID·Gay-Related Immune Deficiency)이라고 불렀던 시절이 반향되어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이 단어가 완전히 종적을 감춘 현재 미국에서 본인이 재학 중인 예일대학교의 엠비에이(경영학석사과정·MBA)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 중에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오른다.

오리엔테이션의 마지막 세션은 다양성과 포용을 주제로 한 워크숍이었다. 인종, 성별, 성적 지향성 등 나와는 ‘다름’을 유발하는 요인들로부터 생기는 무의식적인 편견이 어떻게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고, 조직의 생산성에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그 편견을 해소하여 다양성을 보장하고 포용성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등을 논하는 자리였다. 47개국에서 모인 학생들은 열린 자세로 토론을 했고, 워크숍에서 얻은 배움을 공유하고 그것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워크숍은 마무리되었다.

이후 나는 같은 프로그램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일부 한국인 학생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성 소수자 이슈를 다룬 워크숍에 불편함을 표시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워크숍의 의미가 문화적 차이 등의 이유로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수준으로 전달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한국인 학생들이 느꼈던 문화적 불편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그 근원을 추적하면서 성 소수자 이슈가 수면 위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성 소수자에 대한 이해도와 평등권 수준이 낮은 ‘한국 사회’를 떠올렸다.

통계적으로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성 소수자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는 일반인들이 누리는 인권을 향유할 수 없는 사회의 바깥 범주에 있는 비정상인의 집단으로 간주되고 있어,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을 견뎌내야만 하고, 커밍아웃을 한 후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더라도 국가로부터 “사회적 여건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의 대다수 성 소수자는 자신이 성 소수자인 것을 밝히지 못하고 옷장 속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다시 미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미국 행정부와 사법부는 근래 미군의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제도를 폐지하고, 동성혼을 합법화하였다. 기업의 경영자, 사회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미국의 고등교육기관(MBA 등)은 성 소수자가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한 2020년 미국 대선의 민주당 경선에 동성혼을 한 피트 부티지지 후보가 출마하여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는 현 상황도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단편들만으로 미국 사회에 성 소수자 평등권이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나, 미국 사회가 완전한 성 소수자 평등권을 위해 걸어나가고 있는 길은 분명 옳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성 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포털사이트의 기사와 댓글들을 읽으며 떠올렸다. 옷장 속에 있는 한국의 성 소수자를. 그리고 한국 사회에 묻는다.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성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기만을 기다리며 무관심으로 방관하는 현 정권 아래서 우리는 이 혐오와 차별을 어떻게 해소해나갈 것인가.

한삼만 ㅣ 예일대 엠비에이(MBA)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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