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8 18:36
수정 : 2020.01.09 16:14
노중기 ㅣ 한신대 사회학 교수
지난해 조국 사태의 뿌리에는 대학이 있었다.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대학은 강자 앞에 약한 불공정과 불합리 그 자체였다. 또 진실공방에 나섰던 대학 총장의 학력 위조가 드러나 대학의 진실성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대학이 주역이었음을 고려하면 별로 새로운 일도 아닐지 모른다. 또 이런 일들은 끊이지 않는 일부 교수들의 비행과 일탈, 수십년 동안 되풀이된 족벌 사학의 불법비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 30년이 지났으나 대학 사회는 여전히 전근대적 반민주적 지배질서가 공고하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이런 대학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암담하다. 교육은 지난 60년 우리가 이룬 민주화와 선진국 진입이라는 이중적 성취의 근본 토대였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지금, 질 높은 고등교육은 더욱 절실해졌다. 제조업 기반 경제체제를 벗어나 지식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융합과 창의의 인문사회 지식도 사회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 대학은 학교 간, 전공 간 학벌 차별이 극심한 고비용 취업학원으로 전락했다. 교육 관료의 대학 지배와 시장경쟁체제 도입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요인이었다.
암담한 현실에서도 대학의 회생을 바라는 이들은 지금 교수노동조합을 주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올해 봄부터 교수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되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박탈한 대학교원의 노동기본권이 약 60년 만에 회복된 것이다. 그간 교육 관료와 족벌 사학의 억압적 지배에 교수들이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은 대학 위기를 불러온 본질적 요소 중 하나였다. 이들이 단결하여 올곧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속속 결성되는 교수노조에 대해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교수에 대한 깊은 불신과 함께 노조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의 여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도 특권적 집단인 교수들이 사회의 이익에 반하여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이기적으로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 시작하는 교수노조운동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먼저 대학 구성원으로 교수노조의 활동은 임금, 노동조건 개선에만 국한되어선 안 된다. 현재 대학의 상황을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활동은 정책과 제도 중심으로 대학 개혁과 교육환경 개선에 맞춰져야 한다. 사학의 지배구조 민주화와 비리 척결, ‘국공립대학 네트워크’ 및 ‘공영형 사립대’ 제도 도입, 대학재정교부금법의 제정과 고등교육예산 확충, 교육부의 관료지배 척결 및 대학자치 확립 등이 그것이다. 이는 촛불이 요구한 개혁이자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둘째, 교수노조의 임금, 노동조건 개선활동은 대학교원 내부의 평등과 연대원칙에 기초해야 한다. 현재 대학은 ‘비정년트랙’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비정규직 전임교원들에 대한 차별과 착취에 기초해서 운영되고 있다. 20년 동안 교육부와 사학재단이 만든 교원들 내부의 차별을 없애지 않고서는 대학의 미래는 없다. 정년과 비정년 교수들이 연대하고 약자의 이해관계를 우선 반영해서 투쟁하는 조직일 때 교수노조가 사회적 지지를 얻을 것이다.
셋째, 교수노조운동은 전체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는 지식인운동이자 비정규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연대운동이어야 한다. 싱크탱크로서 교수집단은 사회의 미래를 고민할 의무가 있고 이는 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또 전태일 50주기에 새로 시작하는 민주노조로서 그의 정신을 늘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교수노조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이미 특권적 지위를 가진 교수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반사회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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