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길수 ㅣ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대구에서 30년 넘게 철근 일을 해온 윤삼명씨는 지난달 24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주관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건설업 노사정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분을 참지 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회의 시작 30분 만이었다.
건설노동자, 특히 당시 피해가 심각했던 대구·경북지역 노동자들을 대표한다는 마음에 기대도 컸고 중압감이 높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노사정 간담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간담회에는 노동계 대표로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 경영계 대표로는 대한건설협회와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담당자들이 나왔다.
사실 정부는 노사정 간담회 개최 자체부터 회의적이었다. ‘건설업은 코로나에 대한 가시적 피해도 별로 없는데 굳이 무슨 간담회를 여냐’는 투였다. 이날 회의도 바쁘다는 핑계로 관련성이 작은 부서의 실무자만 보냈다.
더 기가 막힌 건 경영계의 발표였다. 경영계는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휴업에 휴업수당을 줄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을 중단하고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 수급이 어려우니 외국인 고용을 늘리기 위해 고용 제한을 해제해야 한다”는 등 현행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주장들을 펼쳤다.
심지어 코로나19와 관련한 의제만 다루자는 경사노위 사무처의 거듭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경영계는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노동조합”이라며 “노동조합이 건설 현장에서 요구사항이 많아 경영이 힘들다. 경사노위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노동계를 맹비난했다.
정부의 안이한 태도와 경영계의 몰상식에 결국 건설노동자는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올 초,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건설 현장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건설노동자들은 위생물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코로나 감염의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일부 고령자나 이주노동자들은 아예 일을 접었다. 건설노동자들에게는 건강한 몸뚱어리가 유일한 재산이자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용직 일자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얻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가 되었다. 하지만 일자리 감소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전국 30여개 현장에서 방역을 위해 공사가 중단되었고 업체들은 코로나 음성 진단서가 없는 노동자나 확진자가 나왔던 현장에서 일한 자, 코로나가 창궐한 대구·경북지역 건설노동자는 아예 채용을 하지 않거나 해고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마땅히 지급해야 할 휴업수당을 노동자에게 지급하거나 노동자들의 권리침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업체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수주산업의 특성상 현재 개설된 현장은 당장은 일자리 감소가 눈에 띄지 않지만 앞으로 발주가 예정된 공사들이 지연되거나 수주 자체가 줄어들 것이 명백하다.
현재 노동계가 경사노위 측에 노사정 간담회를 요청한 코로나19 관련 위기 산업은 항공, 호텔, 건설 3개 산업이다. 이 중 건설업이 다른 두 산업에 비해 당장은 여파가 적어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거기다 건설업은 두 산업에 비해 종사하는 노동자 수가 훨씬 많고,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압도적으로 크다.
그럼에도 어렵게 건설 노사정이 모인 자리에서 정부의 무관심과 업계의 이기심 탓에 이런 중요한 의제들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윤씨를 비롯한 건설노동자들은 이렇게 푸념한다. “‘노가다’들은 코로나 사태에서조차 차별받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