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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름 없는 인권활동가들의 코로나 고군분투기 / 정민석

등록 2020-05-28 13:29수정 2020-05-28 13:47

정민석 ㅣ 인권재단사람 사무처장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했다. 카드사에서 ‘배정금액 40만원, 기부금액 0원’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평소 지지해온 인권단체를 후원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막상 ‘기부금액 0원’이라는 숫자를 보니 뭔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은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자를 전국민으로 확대하면서 기부금을 모아 고용 유지, 실직자 지원 등을 위한 고용보험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나서서 자발적 기부를 하겠다고 했고, 회사 임원들이나 총선 당선자들, 지자체 공무원 등이 기부에 참여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보고 있다. 현재 무급휴직을 하고 있거나 고용불안을 걱정하는 지인들이 많아 이들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기부처를 비영리 영역까지 확대했다면, 사각지대 지원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 기부도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코로나 위기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감추기 급급했던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청도대남병원 집단감염 때는 정신장애인 이슈가, 마스크 대란이 있었을 때는 줄 설 권리조차 없었던 미등록 이주민, 난민 인권의 현주소가 드러났다. 복지기관 운영이 중단되면서 홈리스 등이 코로나 감염보다 당장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했고,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때는 성소수자 혐오가 난무하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급하고 있는 긴급재난지원금(재난기본소득) 역시 거처가 불분명하거나, 이주민이거나, 주민등록번호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하는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없었던 문제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그동안 감춰져 있던 불평등과 차별의 민낯을 들춰낸 것이다.

차별이 발생한 현장에는 늘 그랬듯 인권활동가들이 존재한다. 자가격리된 장애인과 함께 ‘동행 격리’를 자청하거나, 긴급구호물품을 직접 전달하는 일도 하고, 재난문자를 읽지 못하는 이주민·난민을 위해 통번역을 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이후에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긴급대책본부를 꾸려 검진 안내와 인권침해 상담을 직접 진행하고, 자발적 검사에 방해되는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방역당국과 지자체를 만나며 개선방향을 논의한다. 인권활동가들은 쓴소리도 거침없이 하고 있다. 과도한 동선 공개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안심밴드 도입이라는 통제방식에도 반대하였다. 방역, 치료, 지원 등 코로나19 대응의 전 과정에서 인권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면서, 코로나 이후 디지털 감시사회가 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확진자에 대한 낙인과 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곧 모든 사람의 건강을 해할 수 있음을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이자 통번역가이고 상담가이자 참견자로서 차별과 배제 없이 모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에서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이 앞으로 단체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해일처럼 밀려올 경제위기를 비영리 활동 또한 비켜서지 못할 것이고, 인권단체 대부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후원금 감소는 곧 인권단체 활동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런 위기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인권재단사람이 인권단체 지원을 위한 긴급모금 ‘인권ON(온)’ 캠페인(www.onhumanrights.or.kr)을 시작했다. 1~2월 대비 3~4월 후원금이 줄어든 상황에서 단체 운영비라도 지원한다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인권활동가들이 걱정 없이 활동하고 행복해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을 지키는 일도 가능하고, 인권의 가치를 중심에 둔 사회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인권단체가, 그리고 인권활동가들이 제구실을 톡톡히 할 수 있게 연대의 마음으로 많은 시민들이 화답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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