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선|연세대학교 교수 (보건행정학)
‘의대 정원 늘려야 한다’. 2010년 <한겨레> 기고란에 실렸던 글의 제목이다. 2004년 편입학을 포함해서 연간 3500명 수준이던 의대 입학생이 3058명으로 감축되었다. 의사인력이 과잉이라는 논리에 압도되어 있던 학계와 정책당국에게 의대 정원 늘리라는 칼럼은 무척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2012년 보건경제정책학회는 다시 의사 부족 문제를 학술대회의 주제로 다뤘다. 의대 증원이 드디어 정책 어젠다로 오르는 듯했다. 의사단체 회원들은 성명서 등을 내면서 반발했다.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 뒤로 10년의 세월. 의대 정원은 요지부동이었다. 부족하게 배출되는 신규 의사로 보건의료는 여기저기서 구멍이 났다. 일부 전공과목들은 전공의가 없어서, 일부 지역은 의사 구하고 구경하기가 힘들어서, 병원은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보건소는 공중보건의가 없어서, 기초의학과 감염병 분야는 의사인력이 오지 않아 아우성이다.
의사 부족의 난맥상이 계속되자 드디어 정부는 의대 정원을 400명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의사협회, 전공의협의회, 공중보건의협의회가 반발한다. 거리로까지 나서겠다고 한다. 의대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겠다고 한다. 나는 이미 올라가 있으니 남들은 올라오지 말라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전형이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의사의 질이 떨어진다든가, 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분포가 문제이며 서울 등 대도시는 의원이 차고 넘친다든가, 우리는 땅이 좁아서 의사가 많을 필요가 없다든가, 지금은 모자라지만 나중엔 남아돈다든가, 의사들은 ‘유인수요’를 창출하니까 많아지면 국민의 부담이 늘어난다든가 등등. 과연 그럴까?
첫째, 우리나라 의사들이 최고 수준이라는 ‘자랑’이 있다. 그런데 최고의 의료 수준을 만든 의사들이 들어가던 시절의 의대는 전국 수재들만 몰리는 곳이 아니었다. 의대 정원 몇백명 늘린다고 의사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농담에 가깝다. 시험성적에 매달리는 전교 1등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기본 소양의 인재가 동네 환자를 보는 데 더 적합하다.
둘째, 전문과목 간의 분포와 지역적 분포는 중요하다. 하지만 의사 총량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분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구 1천명당 ‘임상의사’는 2.0명(한의사 제외)으로 평균 3.5명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근처에 있다. 서울의 의원이 많다고 의사 배출을 억제하면 지방의 주민들은 다 서울에 와서 진료를 받으라는 말인가.
셋째, 현재도 부족하지만 갈수록 더 부족해진다. 우리의 의대 졸업생 수는 인구 10만명당 6명으로 오이시디 평균 14명의 절반도 안 된다. 이번 발표대로 해 2021년 입학생을 400명 늘려봤자 2027년이 되어서야 6.8명으로 늘어나지만, 이 역시 오이시디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넷째, 의사들은 환자를 대신해 의료 수요를 결정하므로 불필요한 의료 수요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의사를 많이 뽑지 말자고 한다. 의료비가 많이 드니 의사를 부족하게 놔두라는 것이다. 사실은 거꾸로다.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에 대한 보수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이는 다시 의료서비스 수가에 반영되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높인다.
의료의 오남용이 없도록 하되 필요한 의료서비스는 받을 수 있도록 의료인력의 수급을 맞추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의료정책의 역할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