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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감사원은 원전 안전 문제를 감사하라 / 권태선

등록 2020-10-07 18:19수정 2020-10-08 12:10

‘태풍 탓’ 원전 8기 가동정지 이후

권태선 ㅣ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지난 9월 초 태풍으로 인해 원전 8기가 가동정지 되는 등 유례없는 사고가 났는데도, 당국의 대응은 부실하기만 하다. 원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사고 발생 3주가 지난 25일에야 밝힌 조사 결과는 국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믿음을 주기는커녕 더 큰 불안만 야기하고 있다.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조사해 이날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한 ‘태풍으로 인한 원전사고 조사 및 향후계획’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은 태풍에 실려온 염분이 전력계통 설비들에 쌓이면서 섬락(순간적으로 전기가 통할 때 불꽃이 튀는 현상)과 지락을 일으킨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안전위는 원전 안전을 강화하겠다며 1조원을 투입해 40개 항목에 대한 조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태풍에 날려 온 소금기 때문에 전원이 상실되는 사고를 막지 못했다면 그 조처가 불충분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고가 단지 염해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5일 열린 원자력안전위 회의에서도 이번 소외(외부)정전사고는 안전계통과 연관되는 통합 스위치야드 내 접지시설의 설계·시공 오류를 오래도록 간과하고,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고압선로의 처짐 현상을 방치하는 등 안전관리 부실이 더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초보적 수준의 안전관리를 사업자는 물론 규제전문기관 모두 등한시한 탓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규제기관은 안전관리 부실이라는 직접적 원인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이번에도 안전관리 개선을 위한 근본적 대책 대신 염해 방지를 위한 관련설비 개선 수준의 대책만을 내놓았다.

이번 원전 집단 정지 사고는 원전의 안전성 측면의 문제만 드러낸 것이 아니다. 원전을 여전히 주요한 전력공급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 전력공급체계에서 한꺼번에 대규모 전력공급원이 상실될 경우 지역정전은 물론 대규모 블랙아웃까지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 여러 기가 불시에 정지할 경우에 대비해 어떻게 전력공급망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의 기후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태풍이 과거보다 훨씬 더 자주 발생하리란 게 기상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번 원전 사고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 빈번해지는 자연재해에 원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원전은 한 부지에 6~8기씩 밀집해 있어, 자연재해 발생 때 원전 사고가 동시다발로 일어나 가공할 피해를 일으킬 위험이 없지 않다. 이번에는 다행히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어 원자로의 냉각기능이 유지됐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원자력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할 원자력안전위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대응은 미온적이기만 하다. 이들을 감독해야 할 국회나 감사원 역시 원전 안전 문제는 뒷전이다. 보수세력들의 탈원전 반대 정치공세를 회피하려는 뜻인지 모르겠지만, 이는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무책임한 처사다.

특히 월성 1호기를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는지 여부를 장기간 감사하면서 원전 안전 문제는 도외시하는 감사원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감사원장과 친원전 세력의 유착이 이 감사의 배경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지만, 믿고 싶진 않다. 월성 1호기 문제의 본질은 당국이 안전성도 확보하지 못한 원전을 무리하게 절차를 위반하면서 수명 연장을 허가했음이 밝혀져 법원의 허가취소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에 있다. 또 최근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월성 1호기는 2008년 이후 10년간 매해 적게는 700억원에서 많게는 1572억원까지 적자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원전은 안전을 강화하면 할수록 경제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강구해놓지 못했던 월성원전이 이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었다면, 안전장치를 보강했을 때, 그 경제성이 어떠할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도 감사원이 이 감사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감사원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기구라면 이미 법원에서도 판정이 난 사안을 붙잡고 공연한 분란을 일으킬 게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의 안전관리 문제나 감사하기 바란다. 1조원 이상의 돈을 들여 보강했다는 안전대책이 몇차례의 태풍에 허점을 드러내는 까닭을 철저히 규명해 원전의 안전을 책임질 관리감독 기구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제대로 지키도록 견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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