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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성대 박물관이 공개한 소동파 글씨는 소동파의 글씨인가 / 윤성훈

등록 2020-10-19 18:49수정 2020-10-20 02:41

윤성훈 ㅣ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원

소동파는 과거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지금은 작년의 트렌드조차 기억하기 힘든 시대. 현대의 우리가 왜 먼 과거 중국 송나라 시인의 손글씨를 눈여겨보아야 할까. 동파의 진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황주한식시권>(黃州寒食詩卷,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이다(도판 1). 잔뜩 웅크렸으며 한쪽으로 삐딱한 글자 모양과 개성 넘치다 못해 일견 졸렬해 보이기까지 한 필획. 그 어두운 기운이 예술가의 침울한 내면에 대한 공명을 부른다. 저 유명한 <적벽부>의 표표한 자유인의 이미지와 겹쳐 더욱 오묘한 기분이 든다. 형언키 힘든, 그러나 혹은 그래서, 보는 이의 마음을 파고드는 예술적 감동이요 지적 자극이다.

도판 1. &lt;황주한식시권&gt;의 부분
도판 1. <황주한식시권>의 부분

소동파의 진적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에 최근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이 ‘파두완벽’전을 통해 공개한 소동파의 <백수산 불적사 유기>(白水山佛迹寺遊記, 이하 ‘백수산기’)가 동양 문화에 관심 깊은 이들의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도판 2, 2020년 9월18일~2021년 5월30일 온라인 카카오갤러리 동시 진행. 소동파 진적은 최초 5일만 공개하고 이후는 복제품 전시) 박물관 측의 설명에 의하면 고려 말 원(元) 간섭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줄곧 비장되어 오던 것이라 한다. 사실이라면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던 새로운 소동파 진적의 등장이며 동아시아 문화계의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도판 2. &lt;백수산 불적사 유기&gt;의 부분
도판 2. <백수산 불적사 유기>의 부분

우선 위와 같은 전래 경위의 설명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해야겠다. <백수산기> 곳곳에는 위소(危素, 1303~1372), 팽시(彭時, 1416~1475), 화운(華雲, 1488~1560) 등 명나라 사람들의 도장이 다수 보인다. 원나라 때 고려에 들어온 글씨라면 이런 도장들이 찍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는 전승 과정 고증의 잘못일 뿐 작품 자체가 진품이라면 큰 문제가 못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예 작품으로서 <백수산기>의 문제는, 획이 매우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워 변화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필획에 살지고 마름(비수·肥瘦)의 변화가 없으며, 끝에서 힘을 빼는 기제도 천편일률적이다. 먹 색의 변화도 눈에 띄지 않는다. 즉 <백수산기>에는 글쓴이가 직접 썼을 경우 응당 나타나야 할 먹의 농담 및 운필의 조절이 보이지 않는다. 대개 이는 베껴 쓴 글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동파의 진적을 앞에 놓고 옮겼을 가능성도 적다. 소동파의 다른 글씨들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소동파의 글씨는 오른쪽 위가 올라간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자체(字體, 글자 모양)와 조밀한 포치(布置, 글자의 배치)가 특징이다. 그런데 <백수산기>는 세로로 긴 자체가 대세이며, 포치 또한 성글다. <백수산기>의 글씨는 필획, 포치, 묵색에서 모두 작위적 인상이 강하다.

가장 결정적 문제는 소동파의 본작품 뒤에 후대 사람들이 쓴 감상문, 즉 발문(跋文)이다. <백수산기>에는 조맹부의 아들 조옹(趙雍)과 화가로 유명한 황공망이 썼다는 발문이 있다. 그러나 이 두 발문은 실제로는 황정견의 글이다. 황정견은 소동파 문하 출신이며 그 자신 또한 북송 시대 시와 글씨의 대가이다. 조옹의 발문은 황정견의 <산곡집>(山谷集) 제29권(사고전서 본) 첫머리에 ‘동파의 글씨 뒤에 씀’(題東坡字後)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리고 황공망의 발문은 같은 권 ‘동파의 글씨에 대한 발’(跋東坡書) 일부와 ‘동파가 쓴 원경루부 뒤에 붙인 발’(跋東坡書遠景樓賦後)의 문장을 교묘하게 합친 것이다. 게다가 황공망의 발문은 현전하는 그의 다른 글씨들과 비교해 보면 도저히 그가 쓴 것이라 보기 힘들다. 이 두 발문은 누군가 황정견의 글을 적당히 절취하여 쓴 뒤, 유명 서화가인 두 사람을 가탁한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백수산기>는 명말청초의 어느 시점에 누군가 소동파의 서풍을 흉내 내어 만들어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소동파의 서예 진적은 문화사적 위상과 감상의 가치가 거대하고 무겁다. 따라서 그 진위를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향후 깊은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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