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배 ㅣ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산업안전 영역에서 건설안전은 매우 중요한 부문이다. 무엇보다 사망사고의 절반이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이 비율은 여러 가지 재해예방대책의 시행에도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 때에도 건설안전을 중시한 여러 규정들이 개정되거나 신설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서 규정한 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이다. 이 조항은 수급인의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면 도급인이 모든 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하여 안전·보건조치를 하라고 규정한다. 종전 법령은 일정한 장소에서 도급인과 수급인의 근로자가 함께 작업을 할 때만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삭제하여 도급인이 주도하여 건설 현장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여기에 보태어 제63조를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법인 사업주는 최고 벌금 10억원에 처하도록 법정형도 강화하였다.
이렇게 형사책임 위주로 법령을 강화하여 건설 현장을 비롯한 도급 사업장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법률이 시행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올해 4월 근로자 38명이 사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하였다.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도급인의 의무와 의무 위반에 따른 형사책임이 강화될 것이라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홍보하였으나 이천 물류창고 화재는 그것이 사실상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의심이 들게 하였다. 게다가 고용노동부의 연구보고서(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결 분석 연구)에 따르면 사망사고가 발생하여도 법인 사업주의 평균적인 형사처벌 수준은 벌금 400만원 정도에 불과하였다. 형사처벌의 수준만 놓고 본다면 법인 사업주가 벌금이 무서워서 사업장 안전을 위하여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자 시민사회와 정치권으로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안전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이미 발의되어 현재 심의 중인 이 법안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데 그중 하나가 과징금 제도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토교통부의 주도로 건설안전특별법을 연구하였고 현재 이 법률안도 입법예고된 상태이다. 건설안전특별법은 사망사고 발생 시 영업정지 또는 이에 갈음하여 매출액의 5%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안전과 관련하여 새롭게 시도되는 입법에서 과징금을 강조하는 것은 기존의 형사처벌이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기인한다. 법인 사업주에 대한 선고형이 법률에 규정된 법정형보다 훨씬 낮은 것도 문제였지만 실제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처벌의 주된 대상이 건설을 주도한 해당 기업이 아니라 그 기업에 고용된 현장소장이었던 것도 큰 문제였다. 주지하다시피 도급에 의하여 사업이 수행되는 건설업의 특성상 현장소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여러 수급인 사업주가 전체 공사 기간에 맞추어 해당 공정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안전 문제에 관심이 있는 현장소장이더라도 수급인 사업주 또는 도급인 사업주에게 안전을 우선하는 작업을 요청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임에도 막상 사고가 나면 현장소장이나 해당 사고가 날 당시 그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작업자가 위반행위자로 처벌이 된다. 그렇게 작업할 수밖에 없도록 사업장을 조직하고 관리한 사업주들은 책임을 면하거나 인정되더라도 수백만원 벌금형으로 가볍게 처벌되었던 것이다. 과징금 제도는 이렇듯 부조리한 책임 부담의 문제를 시정하고, 건설을 주도하는 사업주에 직접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업장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시도 중 하나이다.
과징금 제도가 도입되어 실제로 사고 예방이라는 효과를 보려면 법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매출액 대비 과징금의 부과는 기업에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되는 액수일 수 있고 따라서 과징금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이 증가할 수 있다. 이때 법원이 과징금 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던 공정거래법 영역에서 보였던 온정주의적 태도를 건설안전법 영역에서도 유지한다면 시민사회와 국회, 그리고 정부가 애써 만든 제도는 무력화된다. 안전 관련 형사처벌 규정의 해석과 집행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켰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는 것이다.
도급을 통한 사업 수행이 기본인 건설업계에서는 이런 입법적 흐름이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동안 탁월한 건설기술과 열정으로 현재의 위상을 만든 건설업계는 이제 그 위치에 걸맞게 안전에 관한 청사진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과징금 제도 앞에서 죽는 시늉을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서는 선제적인 안전 혁신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