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엽 ㅣ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
광복 75년, 한국은 일제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상흔은 남아 있다. 교육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근대사회에서 일본제국의 교육은 제국 식민지 통치의 수단으로, 근대 교육은 국가 경제 발전의 밑바탕으로 역할을 한정 짓는다. 현대 공교육은 개인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충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 중학교 입시 폐지, 고교 평준화 정책, 고등교육 확대 정책이 펼쳐진다. 일제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중학교 진학부터의 분리교육은 대학 교육으로 넘어간다. 학업 능력을 갖춘 개인이라는 전제 상태에서 겉으로는 계급 간 분리교육이 아닌 것 같다.
그 한 축이 직업계고의 현장실습 제도이다. 그동안 실습생 사고가 있을 때마다 대책은 발표되었지만, 지금의 현장실습 제도는 뒤엉킨 실타래와 같다.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현장실습이 2017년 그해 가장 많이 우리 곁에 존재를 알렸다. 2017년 1월에는 콜센터(자살), 8월에는 병원(자살), 11월에는 제주 음료 생산 공장 사고(산재사망)에 이어 같은 시기 경기도 안산 공단의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투신자살을 시도하는 사건도 이어졌다.
그해 5월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 첫 교육부 장관은 언론에 ‘근로를 제공하는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단계적으로 정착시키겠다고 했다. 8월 대책이 발표되고, 11월 사망 사건 이후 12월에 교육부는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던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2018년으로 앞당겨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근거해 기업에서 훈련 과정을 이수하는데, 현실은 훈련이 아니라 사실상 노무 제공이었다. 현장실습을 교육훈련 과정으로 나가는 학생은 표준협약서, 조기 취업을 전제로 현장실습 가는 경우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이원적 관리체계가 안전 관리나 취지 실현에 있어 작동하지 않았기에 앞으로는 훈련과정 이수로 관리하겠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2년이 지난 현재의 현장실습은 단일한 체제만 남았다. 학습용 현장실습은 온데간데없이 노무를 제공하는 ‘조기 취업’만 남았다. 그동안 반복된 현장실습 사건이 이원 체제가 실질적인 보호조치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반영해서 확립했으나, 단일 체제는 기대한 역할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일정 수준의 평등한 사회가 전제되어야 한다. ‘평등한 사회’를 기계적 기준처럼 몽상적 사회로 치부하는 세력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라는 질문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너의 책임이라고 세뇌하고 있다. 개인이 넘을 수 없는 장막을 거두어주는 정의로운 사회가 성장이 정체된 시기에 필요하다. 어린 나이에 입시경쟁 교육에서 배제를 경험하고, 또 다른 경쟁 장에서 취업교육을 마치 다양한 성공 경로라고 말하는 것은 분리교육 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70년대 배고픔으로 배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전태일과 배움의 기회는 열려 있으나 계급 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교육으로 제대로 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직업계고 학생, 현장실습생의 삶은 똑같지 않지만 비슷한 위치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