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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당신이 방역이다 / 송영오

등록 2020-11-30 18:14수정 2020-12-01 02:40

송영오 ㅣ 사람희망포럼 이사장·전 주 이탈리아 대사

“여기나 저기나 다 찼으므로 교회의 묘지에 아주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운구되어 온 시체를 몇백구씩 함께 묻었습니다.” <데카메론>의 이 구절 같은 일이 올해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졌다. 최근 세계가 코로나 제3차 대유행에 들어섰다. 우리나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격상하고, 서울시는 연말까지 ‘천만 시민 긴급 멈춤’을 선포했다.

최근 점심에 백년 전통의 레스토랑에 다녀왔다. 입구에서 바로 지배인에 의해 좌석에 안내되었다. 식사 후 지배인에게 왜 체온 측정이며 정보무늬(QR코드) 인식 조처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손님들이 체온 측정에 화를 내시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난처해했다. 이 식당은 명사들도 드나드는 곳이다. 내가 나가는 교회는 얼마 전 제한된 규모의 대면예배를 시작했는데 다행히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는 안식일임에도 병자를 치유함으로써 율법보다 사람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친 예수를 따르는 일이다. 신앙을 위한 순교는 있지만 예배를 위한 생명의 희생은 옳지 않다.

화이자와 모더나 등이 잇달아 코로나 백신 실험에 성공해 미국 식품의약국에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마스크도 벗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다고 모두들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코로나 방역 책임자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정말 효과적인 백신이 나오고 대부분 사람이 이를 맞도록 설득이 된다면 2021년 말 정도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반응했다.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도 마스크를 계속 쓰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계속 강조한다.

그간 우리는 의료진과 정부, 그리고 국민들의 노력으로 세계적으로 방역 모범 사례를 보여줬으며, 방역과 일상을 병행하는 코로나 공존 사회를 이끌어 가던 중 다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외부에서 우리 국민이 마스크를 잘 착용하는 것은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는 않다. 차라리 우리 국민이 특별히 ‘건강 예민성’이 강하고 웰빙에도 관심이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설마’ 정신도 강하다. 근거 없이 무방비하고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고 운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설마가 사람 잡고 있다. 역병이나 재앙은 운과 관계없이 무차별하게 닥쳐온다.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 생명보다 더 중할까. 잠깐의 유흥으로 일생을 코로나 후유증에 후회할 생각인가. 설마는 없다. 방심은 금물이다. 당장에 백신도 없다. 앞으로 1년은 정부의 거리두기 상하 조정에 관계없이 우리 스스로 방역 기본수칙을 지키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 우리 국민은 일부 꾀부리는 단점도 있지만, 88올림픽이나 외환위기 때처럼 집단 지성을 발휘해 하나로 뭉쳐 목적을 달성하고 세계에 뽐내려는 장점도 있다. 이번에도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과 사회를 건강하고 자랑스럽게 지키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방역 주체로서 방역 전사로서 코로나를 극복하면서 경제생활을 함께 해 나가자. 당신이 방역이다. 일등 국민의 역량을 발휘해보자. 오래전 알베르 카뮈가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균은 사라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언젠가 인간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다시 나타난다”고 경고한 것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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