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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서울시의 “미래 (사라질) 유산”, 망우리공원 / 김영식

등록 2020-11-30 18:15수정 2020-12-01 02:39

김영식 ㅣ 작가·㈔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올해는 윤년이라 서울시 망우리공원에는 분묘의 이장이 많았다. 지금도 공원 관리사무소 앞에는 이장 시에 50만원을 지원한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묘지에서 공원으로 탈바꿈되는 과정에서 분묘의 이장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인데 서울시 담당 부서는 어르신복지과다.

그런데 2013년 서울시 문화정책과는 망우리공원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독립지사와 문화예술인 등 60여명이 영면하고 있는, 우리 근현대의 스토리를 한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서울시립공동묘지(1933~1973)였던 망우리공원에는 현재 한용운,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등의 독립지사와 화가 이인성과 이중섭, 조각가 권진규,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김말봉, 최학송, 극작가 이광래, 함세덕 등의 문화예술인, 그리고 지석영, 조봉암 등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선구자들이 존재한다. 망우리묘지의 사용 기간에서 알 수 있듯, 한반도 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대가 액자처럼 보존되어 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관련 사이트에서 말하길 “미래유산이란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100년 후의 보물”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관한 정책이 뒤를 이어 나왔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망우리공원에 관해서는 문화유산 보존 대책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독립지사 서너 분의 묘가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2012년쯤에는 건축가 박길룡과 작곡가 채동선, 숙대 초대 총장 임숙재의 묘가 이장되었다. 과거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역사공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껏 대책이라는 것이 작년부터 중랑구가 구민을 중심으로 기억봉사단을 만들어 유명 인사 묘역의 청소와 헌화를 하고 있는 정도다. 망우리공원의 묘는 유명 인사라고 해도 개인이 관리해야 한다. 독립지사 9인은 2017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다른 유명 인사는 유족의 형편이 어려워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제 망우리를 바라보는 관점을 묘지공원에서 역사공원으로 바꿀 때다. 최근 망우리공원은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시민의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공원을 찾는 시민 중에 과거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분묘를 정리해달라는 민원도 요즘은 거의 없다고 한다. 공원에 인접한 망우본동의 도시재생사업도 망우리의 역사성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유명 인사의 묘는 반드시 보존하여야 하고, 서민의 묘도 문화적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보존하여야 한다. 적어도 분묘는 사라지더라도 비석은 반드시 남겨놓도록 해야 한다. 아니 더 나아가, 관리가 되지 않는 무연분묘는 깨끗하게 정리하되 나머지는 남겨놓아 망우리공원만의 차별성,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향도 적극 검토하여야 한다. 역사의 주체는 유명인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관점에서 서민의 묘를 바라보아야 한다.

소중한 망우리공원을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무언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관련 조례의 개정이 가장 시급할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망우리공원은 분명 “미래 (사라질)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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