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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변호사시험에 ‘엄마의 시간’을 부탁해 / 박은선

등록 2020-12-07 16:18수정 2020-12-08 02:41

박은선 ㅣ 변호사·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아니, 애들은 안 보고 뭔 공부래?”

순간 세상이 정지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주말이 싫었다. 특히 시험 기간의 주말이. 주말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 해야 할 공부가 태산이지만 ‘엄마’는 공부만 할 권리가 없다. 부득이 놀이방에 가 여섯살 쌍둥이가 올라선 방방 앞에 앉아서 문제집을 풀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 엄마가 와 따졌다. 아들이 그 집 아이를 밀친 거다. 아들에게 어서 사과하라고 채근했다. 그런데 탁자 위 책들을 가리키며 비난하자 힘이 빠져버렸다.

임신하면 정교사 자리는 물 건너갈 것을 알기에 임신을 미뤘고 정작 정교사가 되어선 불임 치료와 시술을 거치고서야 임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교직을 떠나야 했다. 어떻게든 사회적 삶을 되찾으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들어갔다. 공부는 버거웠고 낮아지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앞에서 나는 조급했다.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하면 책을 꺼냈고, 잠들면 책상에 앉았다 깨어 보채면 등에 업고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누워 지낸 고위험 임신 기간은 오래전 일이고, 잠이 모자란 수유 기간도 지났으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도와주니. 그러니 때로 비난받고 죄책감에 괴로워도 버틸 수 있었다. 뒤집으면 내가 로스쿨 졸업 뒤 임신하고 출산했다면, 아이들이 좀 컸대도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공부할 책을 펴지도 못했을 거란 얘기다.

이른바 ‘오탈제’에 분노하는 건 그래서다. 오탈제란, 로스쿨 졸업 뒤 5년 경과 시 변호사시험 응시권을 박탈하는 제도(변호사시험법 제7조)를 말한다. 군복무 외 예외는 없다. 그래서 로스쿨 졸업생 몇몇은 출산예정일에 통증 속에서 시험을 치렀고, 갓난아이를 돌보느라 시험장엔 발도 못 디딘 이들도 많다. 오탈제의 시한폭탄은 ‘엄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뱃속 아이를 지우고서라도 시험을 치르라 한다. 그런 오탈제에 관해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는 합헌을 선언했다. 재판관들이 그때 그 엄마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애들은 안 보고 뭔 공부래?”

그나마 다행은 반대의견이다. 헌법재판관 4인은, “불측의 중한 사고, 질병 또는 그로 인한 일시적·영구적 장애를 입는 경우, 임신·출산 등을 하는 경우 정상적인 시험의 준비·응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이런 경우와 군복무 간 차별은 ‘평등권 침해’라고 했다. 오탈자들은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될 때까지 헌법소원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그래야 하겠지만 국회도 나서야 한다.

현재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신기간 및 그 종료 후 3개월’의 예외를 담은 오탈제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다만 여기엔 한계가 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신·출산·육아로 시험응시권을 박탈당한 이들을 진정 고려한다면 ‘소급적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려야겠지만 그 전에 국회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국회가 소급적용과 예외사유 확장, 나아가 오탈제 폐지 등 정상적인 개정안으로 좀 더 적극적인 입법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엄마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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