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훈ㅣ강원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35조6322억원. 2019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저출산 대책비로 지출했다는 돈이다. 이해에 30만2676명(합계출산율은 0.92명)이 태어났으니 1명당 1억2천만원을 지출한 셈이다. 2020년 출생아 수는 27만5천명(합계출산율은 0.8명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고 올해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은 자연소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년)에서 0~1세의 영아에 대해 매월 30만원의 영아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새로운 대책이다. 이걸로 합계출산율을 얼마로 높이겠다는 목표치는커녕 예상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합계출산율 목표치와 목표연도를 정하고 그동안 실패를 거듭한 정책들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출산율이 계속해서 감소하는 중요한 이유는 청년들의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주택가격은 치솟는 상황에서 자녀 양육 부담은 점점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청년들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취업과 주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울러 자녀 양육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어야 한다.
우선 당장 출산을 장려하기 위하여 태어나서부터 20살까지 매달 100만원씩, 연간 1200만원의 ‘유소년기본소득’을 지불하자. 이는 2019년 출생한 아이 한 명에 지출한 1억2천만원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다. 20살이 될 때까지 20년 동안 지급해야 총액은 2억4천만원으로 2019년 한해 동안 신생아 1명당 지출한 금액의 2배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리고 2억4천만원은 여러 연구와 언론에서 발표한 ‘출생 후 대학 졸업까지의 총 소요비용’ 약 3억원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2019년 출생아 수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첫해 30만명에 대해 3조6천억원의 예산이 지출된다. 10년 뒤에는 300만명에 대해서 36조원이 소요될 텐데 이는 2019년 한 해 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지출한 저출산 대책비와 비슷한 규모이다. 따라서 현재의 각종 출산·육아·교육 관련 보조금을 유소년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 증세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정책이다. 20년 뒤부터는 매년 600만명에 대해서 현재 가격 기준으로 72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상승할 것이므로 경제규모 대비 실질 부담은 거의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정책이 성공해서 출생아 수가 20년 뒤인 2040년에 합계출산율 2.0명으로 늘어난다면 이보다 예산이 늘어나겠지만 이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유소년기본소득은 자녀양육비에 대한 부담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지자는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20살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소년에게 성장과 교육에 필요한 경비를 사회가 ‘소득’으로 지급하게 되면 부모들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어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유소년기본소득은 또한 고소득층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도 양질의 육아와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래 인적자원의 질적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유소년기본소득 제도의 시행 20년 뒤부터 국립대 등록금을 전액 무료로 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학자금 융자 빚 대신 기본소득의 일부를 저축한 종잣돈(시드머니)을 갖고 사회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사회 양극화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소년기본소득은 또한 부모들의 자녀양육비를 줄일 수 있게 해서 실질소득을 높이게 된다. 따라서 유소년기본소득은 유소년에게만 지급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부모 세대인 중장년층과 노년층에게까지도 소득을 간접적으로 지급하는 효과, 즉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가장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국가이다. 따라서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위기를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혁명적인 정책으로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