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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교사들의 학교 걱정 에너지도 ‘9’랍니다 / 안현호

등록 2021-03-01 18:27수정 2021-03-02 02:39

‘학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읽고

안현호 ㅣ 오산정보고 교사

문수현 학부모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한겨레> 2월18일치 왜냐면)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같은 세대 학부모님 글에 먼저 박수를 보냅니다. 격정적인 문구로 끝나는 글을 읽고 나니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교단에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쓰립니다.

학부모님. 잠시 숨을 돌려보고 싶습니다. 세상에 한 자릿수 자연수(0을 포함한 음이 아닌 정수)만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이를 바탕으로 여기 세 부류가 뿜어내는 ‘학교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에너지 정도’를 각각 한번 측정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먼저 학교 교육에 전혀 무관심한 분들. 이분들 에너지 수치는 당연 ‘0’이겠지요. 두번째, 코로나 유행병이 퍼지는 와중에 자식 수업 결손을 걱정하고 어떻게든 학교 수업을 받게 하려고 애쓴 분들. 대부분 학부모님이 해당하겠지만 특히 문수현 학부모님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공개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고 자녀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이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에너지가 없다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대단한 열정입니다. 그 때문에 학부모님 에너지는 ‘9’로 측정되기에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차등 성과급 폐지” “국가보안법 7조 철폐” 등등을 외치는 분들. 사실 교단에 서기 전 여러 직업을 경험한 제 눈에 비친 교사는 통념상 지극히 모범생에 가까운 분들이 주축인 곳입니다. 그 때문에 어지간해서 조직 내에서 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학부모님이 언급하신 교원 단체 주장은 확실히 간단치 않은 내용입니다. 이런 주장을 대외적으로 한다는 것은 그 당위성을 뒤로하고라도 열정이 없다면 힘든 일이지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자신의 안위만 챙기며 지나가버리면 그만인데도 말이죠. 이런 면에서 학부모님께서 성토하신 특정 단체에 속해 있는 교사도 학교를 걱정하는 에너지 수치는 ‘9’로 측정하기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은 앞서 가정한 자연수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엄연히 음수가 있지요. 아니 정수를 넘어서 허수에 사원수(四元數) 이상도 있습니다. 같은 에너지 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들 주장이 코로나 수업 현실을 외면한 실체가 모호한 허수 같은 소리, 교육에 도움 안 되는 음수 같은 외침으로 들리신 듯합니다.

학부모님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작년에 상당 수업 일수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못해 겪는 고통과 학부모님이 받는 스트레스를 교사가 좀 더 근본적으로 함께했는가라는 자책도 합니다. 다만 앞서 언급된 교사도 학교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에너지의 절댓값이 학부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만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왜 학부모님은 학교에 분노했는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더불어 왜 그 교사들은 그런 주장을 했는가를 학부모님께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겠지요. 교사와 학부모님 서로 같은 절댓값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는 모두가 무기력할 때 아닐까요? “학교는 왜 학원처럼 못 하느냐?”는 질책에 역설적으로 “공교육기관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오히려 화만 돋울 듯합니다. 본질적인 대안이 제시된 답변을 기대했다면 죄송하단 말씀입니다.

작년은 어떠한 치료제도 없는 질병이 퍼져나가는 초유의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학교를 열고 수업을 강행했는데 전염병이 유행했다면 또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그나마 학교에서 유행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도하고 교육의 질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지 모릅니다. 학부모님의 격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는데 그 질에 대해 따져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응급 상황이었던 작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는 어떻게 업그레이드되어 학교 수업이 진행될지 지켜봐주시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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