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진실규명 신청일로부터 3년간 활동하고 필요에 따라 1년 연장해 최장 4년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제발 ‘과거사’ 진실규명이 진전되기를 고대한다. 3월10일 장준하, 박창수, 이철규, 이내창 등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18개 의문사 사건의 피해자 가족 친지들이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의문사라는 말이 무덤덤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남편, 자식, 형제가 갑자기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들이다.
요즘 종종 상식을 무너뜨리는 잔혹한 뉴스가 온 사회를 진저리치게 만든다. 부모가 자식을 때려죽이거나 자식이 부모를 그렇게 하는 일도 벌어진다. 눈과 귀를 틀어막고 싶은 끔찍한 일들. 우리 상식에는 ‘적어도 부모자식 관계라면 이래야 한다’는 규범에 대한 기대가 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헌법에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해놓았다. 그런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때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통치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국가기관이 법에 정한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무고한 국민을 가두고 잔혹한 고문을 하거나 죽였다면, 적어도 법치가 작동하는 정부라면 그 일이 벌어진 원인과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고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마땅할 것이다.
1989년 8월15일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이내창은 무슨 이유인지 안기부 직원과 거문도까지 함께 갔다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그날 저녁 뉴스에 보도되었고 당시 중앙대 학생과 의과대학의 장임원 교수 등은 재빨리 조사단을 꾸려 다음날인 8월16일 거문도에 들어가 목격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채집했다. 마침 풍랑 때문에 아직 섬을 빠져나간 배가 없는 상태였다. 다방 종업원은 이내창과 함께 차를 마신 안기부 직원의 인상착의와 올이 풀려 있던 바짓단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했다. 거문도 동도에서, 변사체가 발견된 건너편 서도로 건네준 나룻배 사공은 8월17일 섬에서 출발하는 부두에서 배에 함께 탔던 안기부 직원을 지목해 이들이 여수경찰서로 연행되도록 했다. 이미 여수에 내려가 있던 수백명의 학생들이 부두에서 여수경찰서까지 이들이 연행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쉽게 풀릴 것 같던 이 사건의 수사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안기부 직원은 바로 석방되었고, 목격자들은 한결같이 진술을 번복했으며 녹음파일도 갑자기 사라졌다. 학생들이 꾸렸던 ‘진상조사위원회’ 상황실에는 훗날 안기부 직원의 파트너였다고 자백한 ‘프락치’가 한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 치하였던 1989년에 벌어진 이 사건은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장기미제 살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몇차례 정권이 바뀌고 진상조사를 위한 국가기구가 꾸려지기도 했지만, 관련 기관들의 자세는 변함이 없다. 국정원은 ‘관련 자료가 없다’거나 ‘공개할 수 없다’는 식으로 조사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그 사건이 벌어진 뒤 이내창의 어머니는 한을 품은 채 돌아가셨고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형제와 친구들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체중 60㎏도 안 되던 스물일곱살 여린 청년을 죽여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일의 진상은 여전히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일까. 어두운 과거의 사건을 정리하는 일 이제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
김성희ㅣ이내창기념사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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