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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반론: 이미 ‘고교학점제’ 길을 걸었던 학교 교사입니다 / 김경엽

등록 2021-03-15 18:50수정 2021-03-16 02:41

김경엽 ㅣ 경기영상과학고 교사

요즘 고등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학점제’ 준비로 부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혹자들은 2025년부터 우리 교육에 그동안의 정책과 매우 다른 결의 제도가 뿌리내린다고 평가하고 있다. 통상 교육정책을 전체 학교 현장에 적용하기 전 일부 학교에 시범운용하여 문제점을 도출한다. 지난 2월25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밝혔듯이 경기도 85.3%인 319개 학교에서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를 한다. 과거 수구적 정부에서의 교육정책도 이렇게 속도를 내진 않았다. 연구시범운영 대상 학교가 이 정도면 경기도의 경우 학점제는 2025년 시행이 아니라 2021년 시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직업계고는 2018년부터 학교별로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왜 이렇게 빠르게 직업계고가 정부 정책의 실험대상이 되었을까? 두가지 지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고등학교는 학년제와 학기단위제가 병존하는 체제다. 직업계고는 대학 학과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대가 다르지만 중등후기의 공교육으로 편입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다양성과 자율성을 일반계고보다 높게 누렸다. 다른 이유는 “나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필경사 바틀비’는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에 저항하는 대신, 나를 포함해서 직업 교육에 대한 상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주어진 것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한탄하고 말았다.

직업계고의 유사 학점제 운영 역사는 길게는 30년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당시 전문계고를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체제로 개악하였다. 인적자원론에 입각한 기능인 양성이며, 비교육적 처사였다. 학교명과 학과명을 변경하며 취업과 연계한 교육과정을 심었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의 지금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는데 건축과 토목이 통합되는 ‘건설’교과로 발령을 받았다. 건축과 토목의 공통분모는 상당해서 건축과에 재직할 때 어려움은 있었지만, 올해 발령받은 경기영상과학고 영상무대디자인과보다는 수월했다. 올해 내가 담당해야 할 노동조건이다. 건축과를 기반으로 한 1학년 담임, 디자인일반, 2학년 영상제작기초와 컴퓨터그래픽. 학교에서는 부전공 연수와 직무연수를 통해 교육활동에 지장 없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한 학교와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본다. 나의 비전문적 교육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질 낮은 교육으로 제공된다. 이에 대해, 고교학점제를 확대 추진하는 교육부의 비책은 비정규직 확대 정책이다.

이재정 교육감이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제도가 이래서, 세상이 저래서라고만 할 것인가?”라고 고교학점제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비판하였다(<한겨레> 2월25일치 왜냐면). 세상이 변하면 교육활동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학생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교육 철학과 방식으로 교육받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학생 모집에 도움이 된다고, 졸업 후 성공시대를 열겠다면서 30년 동안 강력하게 추진한 유사 학점제의 모습이 위와 같았다. 직업계고 모습처럼 일반계고는 대입으로 왜곡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직업계고 유사 학점제처럼 이색적인 교과 신설과 백화점 같은 교육과정 편성은 지식의 이해 수준을 단편적이고 표면적으로 남게 한다.

우리 교육은 인간화교육, 가치교육과 같이 우리 삶에 활용되거나 의미가 있는 교육적 지식이 체계화된 교과교육이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 삶과 연계된 교과 내용과 심도 있는 주제 중심 교육활동으로 비교육적 관점과의 진검승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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