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 ㅣ 농부철학자·보리출판사 전 대표이사
보수매체에 지난날 진보진영 인사들의 글이나 얼굴이 자주 보인다.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고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대로 새는 좌익과 우익 양 날개로 나니까. 이렇게 해서 이제 우익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는구나 여겨짐 직하다. 그러나 그들의 입이나 손끝에서 나오는 말이나 글을 보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지나치게 오른쪽으로만 쏠려 있는 우파 지지자들에게 이제 그 가자미눈 버리고 넙치 흉내라도 내보라고 쓴소리할 줄 알았는데 내용이 기대와는 달리 한결같이 문재인 정부의 잘못만 나무란다. 그리고 그런 말이나 글에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정책 실패를 꼬집을 때 꼭 ‘조국 일가’에 대한 비판까지 곁들인다. 맞는 말도 많지만 그 가운데 지나치다는 느낌을 주는 독설이 가시처럼 박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 어, 별안간 왜 이렇게 날을 세우지? 지난날 한쪽 날만 세웠던 게 공정한 비판 정신에 어긋났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쪽 날도 갈고 있나? 그래서 손에 양날의 칼을 들기로 했나? 귀를 한껏 열고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미심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넙치들이 밀려들어 함부로 파닥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아직도 가자미들 세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탄했던 것처럼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지는 오래되었다. 여전히 기득권의 힘은 막강하고, 그 힘은 도처에서 느껴진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언론의 비판 의식은 과거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다. 다만 걱정스러운 점은 비판 의식은 날 서 있되 비판 정신은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보수언론이나 과거 진보 인사가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것에 큰 불만이 없다. 현 정권이 과거 정권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도록 더 가혹한 비판이 있어도 된다고 본다. 그러나 균형이 문제다. 새의 몸에 왼 날개와 오른 날개가 나란히 반대쪽을 향해 달린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균형이 잡혀야 할 몸통은 누구인가? 국민이다. 그리고 그 국민 가운데 오른쪽 날개만 비대해져서 왼쪽 날개에 깃털만으로 매달려 있는 서민들이 있다.
이제까지는 많이 잡아야 20% 미만의 특권층만 잘살고 나머지 80%의 국민은 희생만 강요받아왔다. 이 소외받은 국민들은 털리고 털린 나머지 깃털처럼 가벼워져서 이대로 두면 머잖아 몸통이 땅으로 곤두박질칠 지경이다. 이런 사정을 진보고 보수고 모를 턱이 없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기득권 편이어서 그렇다 치고, 왼쪽 날개에 매달려 힘을 실어주어도 오른쪽으로 날개가 기우는 마당에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그 비판 정신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선거를 앞두고 있다. 보수매체들이 지난날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치도곤을 맞을 각오를 하고 비판 정신을 견지하고 있었던 진보 인사들을 한둘도 아니고 무더기로 불러들이기에 바쁘다. 그 목적이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