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우 ㅣ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디지털 경제의 국제 과세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19년 7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다국적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프랑스 사용자들에 대한 온라인 광고, 개인 데이터 판매, 중개 사업으로 얻은 매출의 3%를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강제하는 ‘디지털 서비스 세금’(디지털세) 입법안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2020년 5월 기준, 영국, 오스트리아, 인도, 터키 등을 포함한 전세계 22개 이상의 나라가 이와 유사한 법안을 제안했거나 실행하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21년 중반까지 디지털세 합의안을 도출하기로 결정하였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세계 각국 정부의 실질적인 과세권을 담보해주는 법률적 장치가 디지털세의 형태로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플랫폼 기업은 전세계를 무대로 막대한 이윤을 얻으면서도 정작 각국 정부에는 터무니없이 낮은 법인세를 부담해왔다. 예컨대, 구글이 2012년도에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얻은 81억달러의 소득에 대해 납부한 법인세율은 고작 2.6%에 불과하였다. 디지털세는 ‘가치가 생산된 곳’과 ‘세금을 납부하는 곳’을 일치시킴으로써 이러한 국제 과세 체계의 고질적 폐해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점은 각국 정부가 디지털세 도입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결정적인 근거를 다름 아닌 ‘사용자 가치 창출’ 관념에서 찾는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구글이 프랑스 소비자를 향한 독일 자동차 광고 위치 판매를 통해 얻는 수익은 바로 프랑스 구글 사용자들이 창출한 가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예 영국 재무부 장관은 사용자 가치 창출 형태를 ‘사용자-생산 콘텐츠’, ‘사용자-창출 데이터’, ‘사용자 브랜드 기여’ 등으로 적시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이윤이 자국 사용자들의 콘텐츠, 데이터, 브랜드 생산 노동에서 나오는 것인 한, 해당 정부가 그것을 과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디지털세가 이미 법인세를 정상화하는 차원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실상 지대가 되어버린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수익에 대한 세금이다. 플랫폼 사용자의 무상 노동이 생산한 콘텐츠와 데이터는 특정 지리적 장소에 존재하는 원료로서의 천연자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한국 소비자에 대한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얻는 페이스북의 광고 수익은 한국의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생산한 콘텐츠와 데이터에 토대를 둔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소비자를 표적 삼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지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세는 자원 보유국의 로열티처럼 다국적 플랫폼 기업이 특정 국가에서 획득한 지대에 대한 세금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원 보유국은 자국의 천연자원 채굴에서 나오는 수익에 대하여 법인세와는 별도의 로열티, 즉 지대세를 채굴 기업에 부과한다. 아울러, 세계 각국의 표준 법인세 체계는 일상적 법인세에 더하여 초과 이윤과 같은 특수한 이익에 대한 부가적 과세 수단을 설정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법인의 소득 중 비사업용 토지 등 양도소득이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법인세 기본 세율에 더하여 10%의 추가 과세가 이루어진다. 부동산 법인의 경우도, 사업소득에 대한 법인세와 더불어 부동산양도소득에 대한 세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즉, 법인세와 디지털세는 이중과세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디지털세의 핵심을 이루는 ‘사용자 가치 창출’과 ‘지대세’ 관념은 기본소득의 필연성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본소득은 디지털 플랫폼 사용자의 무상 노동이 공동으로 창출한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 수단이다. 아울러, 불로소득으로서의 지대에 대한 과세가 근로소득에 대한 그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빅데이터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플랫폼의 광범위한 불로소득은 그것의 진정한 생산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 그래서 디지털세는 부동산 지대에 대한 세금과 더불어 기본소득의 중요한 재원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