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ㅣ전업주부
얼마 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노환으로 선종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하는 장기기증에 서명한 바 있다고 알려져 왔다. 선종 뒤 장기기증 서약에 따라 정 추기경의 안구 적출 수술이 이뤄졌고, 안구는 망막과 각막 등 안구질환 연구에 활용된다고 서울대교구는 밝혔다. 평소 소박하고 낮은 삶을 지향했던 정 추기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주교 서품을 받으며 정했던 사목 표어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주다’를 직접 실천하셨다.
가장 고귀한 생명 사랑 실천 소식은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으로 침통과 우울에 빠진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했다. 여태껏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해왔던 내 자신의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여러 형태의 이웃 사랑 중 장기기증이야말로 한 인간이 타인에게 베푸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이자 이타적 삶의 결정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식 대기자 수에 비해 장기기증자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4만여명에 이르지만, 뇌사 기증자는 450여명 정도다. 우리나라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전 국민의 3% 수준으로, 미국(61%), 영국(38%) 등 기증 선진국에 비해 저조한 편이다. 신장이식만 해도 평균 5년가량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기증에 인색한 이유야 많겠지만, 특히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잘 보존하는 일이 부모에 대한 효의 출발점이라는 의식 구조가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어렵게 기증을 서약해도 실제 기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오랜 세월 국민 개개인의 삶과 의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 공통으로 나타나는 의식 구조는 단시일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
먼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증의 필요성을 적극 알려 지금까지의 국민 의식과 인식 개선의 대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위해 공인이나 사회 지도층에서 장기기증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기증에 대한 긍정적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정부는 기증 절차의 간소화를 포함해 관련 법과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국민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수 있도록 범국민적 차원에서 홍보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기증자의 유족에 대한 수혜 범위를 대폭 넓히는 제도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학교에서도 기증을 통해 세상에 남긴 소중한 씨앗이 새로운 생명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꺼져가는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성스럽고 숭고한 행위가 장기기증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되새기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약 없이 장기기증을 애타게 기다리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환자와 가족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값진 소식이 하루속히 전해지길 바란다.
장기기증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