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권순기 ㅣ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경상국립대가 소재한 경남 진주에서 가장 큰 기업이자, 대한민국 최대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석달째 이슈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엘에이치 일부 직원의 땅투기 의혹 때문이다. 정부는 강력한 ‘엘에이치 혁신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는 엘에이치의 해체·분사·기능조정 등 갖가지 방안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몇년 전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린다. 정년퇴임하신 뒤 제주도에 계시는 지인이 맛있는 과일을 한 상자 보내주셨다. 과일 상자를 열어 냉장고에 집어넣는데, 무농약이라서 그런지 아래쪽에 상한 과일이 있었다. 깊이 고민할 것도 없이 상한 과일을 버리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보관하여 두고두고 잘 먹었다. 상한 과일이 하나 나왔다고 하여 과일 한 상자를 모두 버려야겠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논의되는 엘에이치 혁신방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 경험이 떠올랐는데, 이유는 당시 필자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 ‘상식’과 ‘합리성’이었고, 현재 논의되는 엘에이치 혁신방안의 기준이 상식과 합리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엘에이치 사태는 공직윤리 상실과 내부통제 시스템 미비, 부동산 시장 광풍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올바른 엘에이치 혁신방향은 공직윤리를 확립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이미 엘에이치 직원의 부동산 신규 취득 제한, 보유 부동산 신고·등록, 토지보상 혜택 배제 등 투기 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했다.
투기 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책이 마련된 상황에서 엘에이치의 해체나 기능조정 같은 대책이 필요한가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한다. 특히 도시조성과 주택공급, 주거복지라는 엘에이치의 역할이 여전히 국민과 국가를 위해 유효하고, 전문가들은 엘에이치의 사업 분야가 사분오열되어 효율성이 떨어지면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를 더 투입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까지 한다.
특히 필자는 지역대학의 총장으로서, 엘에이치 혁신방안 수립 과정에서 지역사회에 미칠 막대한 영향이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엘에이치 본사가 경남 혁신도시로 이전한 지 6년, 엘에이치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엘에이치는 지역인재 육성과 지역대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엘에이치와 경상국립대 등 지역대학들은 지역선도대학 육성, 지역인재 우선 채용 등 산학협력을 활발하게 전개 중이다. 특히 매년 지역대학 졸업생 100여명이 엘에이치에 취업한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엘에이치와 지역대학들의 긴밀한 상호협력이 수도권 일극체제를 완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엘에이치는 경남도에 지방세 납부, 특화사업, 농산물·지역화폐 구입, 도심 내 공원 및 힐링공간 제공, 도서관·미술관 건립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활동 지원으로 연평균 1000억원이 훨씬 넘는 경제적·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
엘에이치 일부 직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철저하게 수사하여 위법 사항은 엄중하게 처벌·징계해야 한다. 엘에이치는 이번 기회에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공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다만, 엘에이치 고유 업무에서의 책무성과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엘에이치를 필두로 한 혁신도시 입주기관들의 역할과 지역사회와의 혁신 네트워크 구축은 지방소멸과 지방대의 위기라는 시대적 과제 해결과 지역혁신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