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소준섭ㅣ전 국회도서관 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통감부가 설치되었다. 당시 제정된 ‘통감부 및 이사청관제(理事廳官制)’를 보면, ‘이사관’의 업무는 “통감의 지휘감독을 받아 영사사무와 제2차 일한협약(을사늑약을 가리킨다) 및 법령에 기초하여 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 ‘이사관’은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히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제국군대 사령관에 출병을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부이사관’은 “이사관의 명을 받아 청무(廳務)를 처리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사관’은 현재 우리나라의 2급 공무원 명칭으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고, ‘부이사관’은 3급 명칭이다.
우리의 ‘빛나는’ 1급 공무원 명칭인 관리관 역시 일제 잔재이다. 1876년 10월에 일본은 부산에 부산주재 일본 ‘관리관’을 파견하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1894년 발발한 동학농민혁명을 빌미로 조선에 무단 진출하여 청나라와 전쟁을 감행하였다. 그들은 동시에 군대를 동원하여 불법적으로 경복궁을 습격하여 점령하고 고종을 감금하였다. 그러면서 일본 오토리 공사는 이른바 ‘내정개혁방안 강령 5개조’를 강요하였다. 또 스기무라 서기관은 대원군과 직접 접촉하면서 노골적으로 강박하고 회유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일제가 자행한 일련의 행동들은 1876년 강화도 침입 이후 조선 침략과 정복을 준비하고 치밀한 연구 끝에 나온 산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었고, ‘의정부 관제안’이 1894년 6월28일 가결되었으며 7월20일에 정식으로 시행되었다. 철저한 일본식 관료제도였다. 이 ‘관제 개혁’에 ‘서기관’을 비롯하여 ‘사무관’, ‘주사’, ‘서기’ 등 새로운 관제에 의한 일본식 직급 명칭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도 당시 새로 부임한 지방관은 조선의 국왕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임명받았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조선 식민지화의 토대를 쌓기 위한 일제의 공작이었다.
이렇듯 현재 우리 공무원 명칭은 일제 침략의 적나라한 상징이다. 공무원 조직이란 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근간 조직이다. 이 근간 조직이 일제 침략자들이 ‘강제’한 명칭을 무려 한 세기도 훨씬 넘게 애지중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역사의식이 결여된 대목이며 치욕적인 일이다. 반드시 청산하고 긴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