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선언한다

등록 2021-06-09 18:11수정 2021-06-10 02:37

[왜냐면] 전대협동우회
‘빨갱이’란 한마디에 무수한 사람들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었다.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그 앞에서는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무시당했다. 헌법 위에 존재한 국가보안법은 국민들 머릿속 생각까지 틀어막는 독재권력의 통치수단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본뜬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3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우리 국민들은 4·19와 5·18을 통해 독재에 맞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2017년 촛불투쟁으로 민주주의를 바로 세웠다. 분단과 대결의 남북관계에서도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지난달 10일부터 시작한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청원이 9일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사위에 회부됐다. 국민들의 힘으로 국가보안법 폐지가 공론화된 것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11년 출간한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 시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을 아쉬운 일로 꼽았다.

그런데도 왜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가보안법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했을까. 180석 여당은 왜 국가보안법 문제를 외면해왔을까. 여전히 분단대결 세력의 ‘빨갱이’ 프레임이 두렵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조차 국가보안법의 공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을 오가며 다양한 만남과 합의가 이어졌다. 수많은 민간단체들의 방북과 교류협력사업이 진행되었고, 기업의 경제협력사업이 추진됐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상 북한은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막힐 때마다 여지없이 국가보안법 사건이 등장했다. 공안기관의 수사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었다. 화해를 말하면 고무찬양, 통일을 연구하면 이적표현물 소지였다. 북한 사람을 만나면 회합통신이었으며 모임을 만들면 이적단체 구성이었다. 이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웃픈’ 현실이다.

혹자는 반문한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문화되지 않았냐고. 그렇다면 죽은 법을 뭣 하러 모셔둔다는 말인가. 빨리 치워버리는 게 답이다. 더구나 2018년 구속된 대북사업가 김호씨, 최근 구속된 4·27시대연구원 이정훈씨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한 출판사 대표 압수수색에서도 보듯이 국가보안법은 결코 사문화되지 않았다. 지금도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전대협은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 조직 중 하나다. 전대협은 산하 기구인 정책위원회와 조국통일위원회가 이적단체로 낙인찍힌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전대협이 활동한 1987~1992년 6년 동안 1000명이 넘는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양산됐다. 분단의 벽을 뚫기 위한 통일운동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무수한 국가보안법 구속자와 수배자였다.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자인 전대협 세대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는 일은 시대의 소명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증오의 시대, 대결의 시대를 끝내는 일이다. 통일의 상대방인 북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다. 더 이상 우리가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에 새로운 실마리를 풀어내는 일이다.

6월 민주항쟁 34주년이 되는 2021년 6월10일, 우리는 전대협의 이름으로, 각계각층 전대협 세대가 참여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선언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전대협을 탄생시킨 6월 민주항쟁의 마지막 남은 과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