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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실패한 NCS 정책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등록 2021-06-09 18:12수정 2021-06-10 02:38

[왜냐면] 김안국ㅣ한국직업능력개발원 명예위원

박근혜 정부는 능력중심사회 건설이라는 구호로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NCS·엔시에스)을 만들었다. 능력중심사회로 표방되는 능력주의가 개인 성과의 불평등이 사회가 아닌 개인 책임(능력 부족)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것에 대한 반성적 고찰 없이 대대적으로 개발 보급한 것이다.

원래 국가직무능력표준은 1980년대 중반 현재처럼 산업이 복잡하지 않았던 시기에 직업교육과 산업의 연계가 약한 영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 시장중심주의 국가에서 만들어졌다. 이후 산업이 복잡다단하게 발전하고 직무의 융복합이 일어나면서 엔시에스는 시의성이 떨어졌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더이상의 개발을 멈춘 상태다. 뒤늦게 2013년 시작한 우리나라의 정부 주도 엔시에스 개발은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다. 산업단체와의 합의와 협력을 통한 방식이 아니었기에 엔시에스가 적합한 직무를 선별하는 과정이 없었고, 직무 분류 단위는 너무 세분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엔시에스를 정부는 천편일률적으로 보급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큰 잘못은 엔시에스를 정규 교육과정에 적용한 것이었다. 원래 능력중심사회 건설이라는 구호는 학력주의나 학벌주의의 폐단을 극복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학력주의, 학벌주의의 온상인 4년제 대학은 그대로 놔두고, 직업계고와 전문대학에 능력중심(?) 교육이라며 엔시에스를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다. 기존의 정규 직업교육이 능력중심사회를 가로막는 요인이었던가? 정규 직업교육이 능력중심사회를 구현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는가?

엔시에스 기반 직업교육이 교육으로서 타당성을 갖는지도 의문이다. 엔시에스 기반 교육은 특정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술(기능)을 갖추도록 학생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직무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교육의 본령이다. 직업교육을 통해서 개념과 원리를 학습하고, 기술 습득과 함께 몰입하고 전문성을 쌓아가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하고 변화가 많은 산업 환경 속에서 직업교육을 마친 이들이 스스로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정부는 엔시에스의 활용을 힘없는 직업계 고등학교에 강제하였고, 전문대학에는 각종 지원 프로그램에 엔시에스 활용을 조건으로 내걸어서 결국 엔시에스 기반의 교육과정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에 학교 사정과 학생들 수준에 맞지 않는 엔시에스를 산업체 근무 경험이 없는 교사나 교수가 가르치는 일이 벌어졌다. 엔시에스 학습 모듈은 학교 시설이나 장비로 실습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산업현장 전문가가 제시한 평가 방법도 학교 현장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학교는 전문적인 기술 능력만이 아니라 평생학습의 토대가 되는 인지적 역량과 비인지적 역량을 길러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엔시에스 교육과정으로 직업훈련기관과 동일하게 되어 버렸다. 학교 교원들은 훈련기관 강사와 같은 처지로 전락한 듯한 자괴감에 빠져 있다. 기업에서 쓰지도 않는 엔시에스에 기반한 교육과정을 짜고 가르치느라 직업계고 교사와 전문대 교수들이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부는 엔시에스 기반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 학생 모집, 교원 연수와 수급, 교과서와 교육과정에 대한 분석과 편성, 실습실 구축, 산학 협력 등을 우선적으로 검토했어야 했다. 졸속으로 만들어져 시작된 엔시에스 교육과정이 이번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언제까지 실패한 직업교육 정책을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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