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장헌권ㅣ광주 서정교회 목사·국가보안법폐지광주시민행동 공동대표
우리는 기억한다. 평창에서 남북단일팀을 만들어 함께 출전했다.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세번씩 치른 판문점 봄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해 2018년부터 3년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당한 사람만 67명이며 603명이 조사를 받았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처벌이 확정되기 전이나 기소가 되기 전 이미 ‘저 사람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받고 있다’는 것만 인지가 되어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죄인 아닌 죄인이 된다.
국가보안법은 지금까지 ‘빨갱이’ ‘간첩’ ‘종북’ 등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1948년 12월1일 제정되었다. 앞서 10월 여순사건이 터졌다. 그때 좌익세력의 폭동을 막아야 할 비상시기라고 하면서 졸속으로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탄압했던 치안유지법의 후신으로 말이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은 끊임없는 검열과 통제를 통해 정권유지 수단으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왔다. 차별과 배제·혐오를 조장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던 것이다. 영화에서 북한 인민군이 인간적으로 나온다고 감독이 잡혀가고, 북한을 조롱하고 농담하는 트위트를 올려도 감옥에 갔다. 당원들이 모인 행사에서 민중가요 한곡을 불렀다고 잡아가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이뿐만 아니라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민주인사를 고문과 조작으로 가두고 심지어는 대법원 판결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형을 집행하고 시신을 화장했던 것이 바로 반민주 악법 국가보안법이다. 이처럼 권력가들은 정권 위기 때마다 국가보안법을 구실로 온갖 조작사건으로 생명을 짓밟는 일을 자행했다.
필자는 광주·전남지역에 살고 있는 장기수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있다. 장기수분들은 분단된 조국의 희생양들이다. 간첩 조작사건 등으로 10년에서 20년, 심지어 30년 장기간 동안 감옥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특히 고문으로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출옥해 송환을 원해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끝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국가보안법은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제도로 악용되어왔음을 국민은 알고 있다.
이미 유엔인권이사회,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앰네스티에서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또한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하게 권고를 했다.
뜻있는 시민들은 더는 지켜볼 수만 없어서 올해 3월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을 출범시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5월 시작했다. 시작한 지 9일 만에 10만명을 달성했다. 이처럼 10만 청원이 단기간에 달성된 건 일제의 잔재이며 반인권, 반민주,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뜨거운 열망과 간절함이 스며든 결과다.
최근 북한이 남한을 ‘혁명 대상’으로 명시한 노동당 규약 속 ‘북 주도 혁명 통일론’ 관련 문구를 삭제한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북한도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함께 변해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이제 국민의 뜻을 알아차리고 국회가 속히 움직여야 한다. 특정한 정당이나 특정한 의원이 아니라 제 정당과 의원들 모두 촛불 국민의 기대와 염원을 명심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진즉 역사의 뒤안길로 이미 사라졌어야 할 적폐 중의 하나인 국가보안법 폐지야말로 촛불 명령이며 역사의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