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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밭고랑만큼 긴 하루, 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농사라니

등록 2021-06-30 14:55수정 2021-07-01 02:05

언제까지 농민들은 원가도 건지지 못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묻고 싶은데,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귀농해서 농사짓던 젊은 친구가 7년 동안의 농사를 접고 다시 직장을 구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은 남의 일이 아니다. 직장생활과 달리 제대로 보장되는 게 없는 농촌의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오늘, 하루가 길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ㅣ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통계조사차 나왔노라며 몇가지 물어보고 갔다. 매출은 얼마인지, 고정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홍보는 하고 있는지 따위를 대답하면서 생각하고, 조사원이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살아왔구나.

신문에 보도된 농가소득 통계를 보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10년 동안 내린 뿌리로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허탈함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밥상물가는 올랐다는데 농민들의 볼멘소리는 여전하다는구나. 그런데 농식품부조차도 소비자물가 안정을 우선 걱정하는 모양새다. 농민들의 생산원가 걱정은 오롯이 농민들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농민들은 원가도 건지지 못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묻고 싶은데,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농업정책이라는 것이 모두 ‘대농’을 위주로 시행되고 있으니 그 상대적 박탈감 또한 만만찮단다. 요즘 지자체마다 시행하고 있는 농촌일손돕기마저 혜택에 있어 차별이 아주 심하다. 농사 규모가 작으니 일손 도움을 요청하기가 왠지 부끄럽고, 설사 요청해도 일손 연결은 하늘의 별 따기다. 귀농지원이니 농민기본소득이니 소리는 요란하다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숫자에 집착하거나 생색내기 위주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하단다. 똑같이 농사를 짓고 있는데도 농사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농업정책에서 밀려나는 것도 일상이야.

아로니아 매출이 곤두박질치며 올해 밭농사를 새롭게 시작했다. 묵혀 있는 경작지를 잡고 밭을 갈았다. 넉넉히 퇴비를 뿌리고 이랑을 만들었지. 씨감자를 구해서 심고 옥수수와 고추도 심었어. 그런데 고라니가 대들어 심어놓은 고추 모종을 순 따 먹는 것도 모자라 모종을 몽땅 뽑아놓았단다. 고추 모종을 다시 심어야 했고 고라니 망도 두번에 걸쳐 단단히 설치했다. 이제 감자 수확을 앞두고는 이걸 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팔기 위해서 비료로 키워낸 농작물이 옛날에 먹던 맛이 아니란 것은 이제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이 되지 않았니. 그런데도 판매를 앞두고는 유기농업을 고집하는 것이 무색하기 짝이 없구나. 밭고랑만큼 긴 하루를 풀하고 씨름하면서, “풀은 못 이겨” 하는 동네 할머니 얘기를 웃음으로 날린다. 팔아야 하는 걱정 없이 농사만 잘 지으면 된다고 하면 네가 시골로 온다는 일을 이렇게 절절히 말리지 않아도 될 건데 말이다. 귀농해서 농사짓던 젊은 친구가 7년 동안의 농사를 접고 다시 직장을 구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은 남의 일이 아니다.

소농들을 위한 대안으로 요즘 흔히 말하는 사회적 경제를 위해 괴산에서 농사짓는 농가들과 함께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고, 서너 단체가 합심하여 괴산 지역에 로컬매장을 만들어냈다. 여러가지 걸림돌이 있었지만 난관을 이겨내고 오픈했다는 것만으로 박수 치며 뿌듯해했단다. 상추도 뜯어다 내고, 씨앗 뿌려 키운 적겨자채와 루콜라도 포장해 내어놓았다. 돌미나리와 머윗대도 끊어다 냈다. 한창 나오기 시작하는 깻잎도 포장했다.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새로운 기대도 생겼다. 그러나 두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실망이 커졌다. 상추는 너도나도 안 내는 농가가 없으니 가격이 형편없고, 엽채류의 특성상 판매 기간이 짧아 물건을 내놓았지만 회수하기에 바빴다. 거기에 수수료를 떼고 나면 손에 쥐는 건 쥐꼬리 정도였거든. 괴산군민 수가 적기도 하지만, 홍보도 덜 되어서 아직까지 방문객 수도 보잘 게 없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볼 만한 건덕지는 로컬매장에 있다고 믿는단다. 계약재배를 못 하고 농사를 지었지만 판매할 곳이 없는 소농들이 비빌 언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괴산군이 이 바람을 잘 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야.

마음의 병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다시 큰 병이 된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심했던 네 아빠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던 거 아니니. 실려 간 날, 생일 축하한다고 동료들이 마련해준 자리에서 떡 하나 집어 먹은 게 체한 줄 알았대. 그렇게 명치 끝에 오는 통증이 극심했단다. 마침 엄마가 외출 중이어서 집에 와 보니 눕지도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있더구나. 응급실로 들어가자마자 꽂은 심전도 측정기에서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심혈관의 맥박을 가리키는 선이 파동 없이 직선으로 나타나고 있었어.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지. 구급차를 타고 동네에서 대학병원까지 어떻게 갔는지도 몰라. 심폐소생술을 의사 두명이 번갈아 하더구나. 그 순간의 아득함이라니, 천길 낭떠러지가 따로 없었다. 그 자리가 절벽 끝이었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위기를 살아냈구나. 그래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가볍지 않음을 아주 잘 안다.

슬슬 말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다고 직장생활과 달리 제대로 보장되는 게 없는 농촌의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오늘, 하루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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