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삼면이 바다지만 고래가 안 보이는 나라. 어쩌다 한마리 잡히면 언론이 “로또”라고 쓰는 나라. 그 극소수의 고래를 먹어치우며 ‘먹방’하는 나라. 고래의 입장에서 본 21세기의 한국이다.
고래가 해양생태계에 매우 중요하다는 건 증명된 사실이다. 대기 중 산소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주요 먹이 중 하나가 고래 배설물이다. 고래는 표층과 심해를 오가며 바닷속 영양분 순환을 증진하고, 그 사체는 해저생태계에 영양을 공급하며 다량의 탄소까지 저장하니, 죽어서도 돕는 존재다. 인간이 살게 놔둔다면 말이다.
한국에 고래가 있다는 걸 모르는 이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씨를 말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래는 ‘큰’ 고래(수염고래)를 말한다. 우리에겐 사실상 밍크고래 한 종이 유일하다. 과거엔 포경꾼도 눈길을 안 주던 제일 작은 종 하나 남고 나머진 거의 자취를 감춘 셈이다. 간혹 “고래가 너무 많아 물고기를 다 먹는다”는 어민들이 있다. 이는 사실도 아니지만, 많고 적음의 기준부터 틀렸다. 지난 세기 동안 전세계 고래가 급감한 건 팩트다(1890~2001년에 65% 감소). 그런데 가령 100마리에서 1마리로 줄었다가 3마리가 되면 ‘급증’인가? 황폐해진 상태를 전제로 해 판단이 왜곡되는 걸 ‘기준선 이동 증후군’이라고 한다. 적정 개체수를 알려면 인간이 안 건드린 상태를 봐야 한다. 고래가 활개치는 바다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비숙련자도 쉽게 다양한 고래를 본다. 우리 바다에선 숙련자도 어렵사리 발견한다.
이 중요한 동물이 어쩌다 이렇게 귀해졌을까? 엄청난 상업 포경으로 씨를 말린 건 러시아와 일제였다. 즉 고래 ‘잡는 문화’는 강대국 침탈사의 잔재지 자랑거리가 아니다. 차라리 반구대 암각화 이후 19세기까지 포경이 거의 없었던 전통이 자랑이다. 1982년 상업포경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대다수 국가는 포경을 금지했다. 한국도 금지했다, 불법 포경만. 대신 합법 포경이 존재한다. ‘혼획’이라 부른다. 잡을 의도는 없는데 ‘잡힌’ 거란다. 의도를 누가 판단하나? 해경이 한다. 어떻게? 작살 자국이 없고, 금속탐지기 한번 훑으면 합법 판정이다. 이렇게 쉬우니 고래가 다니는 물길에 그물을 치고 잡아 익사시키면 그만이다. 여기다 불법 포경도 기승을 부린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잡은 고래 수는 적은데, 유통량은 배 이상이다. 허술한 법만 문제는 아니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너무 크다. 고래 한번 잘 잡으면, 어가 1년 평균 소득의 약 절반을 한번에 번다. 고래를 살려주는 어부는 천사다.
이 모든 걸 정부는 수십년째 수수방관했다. 책임 기관 해양수산부는 말로만 고래 보호, 보여주기식 고래 고시 개정만 반복했다. 그나마도 두가지 이유 때문에 했다. 여론 의식 그리고 최근엔 미국 때문에. 미국은 해양포유류보호법(MMPA)을 강화해, 자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해양포유류를 보호하지 않는 국가를 평가해, 필요시 경제제재까지 하는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고래 걱정보단 수출길이 막힐까봐, 해수부는 미국해양대기청(NOAA)에는 강력한 보호 의지를 천명해놓고, 고래식당 업주들에겐 “고래 식문화의 전통을 어필하겠다”며 한입으로 두말했다. 부끄럽지도 않나? 고래 보호는 강대국 눈치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70% 이상이 고래 식용 반대, 고래식당이 밀집된 울산 시민의 88%가 포경 금지에 찬성한다. ‘의도적 혼획’의 심각성과 현 제도의 허점을 알면 이 수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시대가 원하는데 정부는 전국 100여개 식당 중심의 강성 이익단체 눈치만 본다. 가장 과학적인 자문 기능을 해야 할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조차 고래식당 걱정이 먼저다. 이 나라는 하나 남은 고래를 포기했다. 살리는 건, 이번에도 시민들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