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미지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기분이 이러할까. 조심스레 들어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신비로웠다. 온갖 풀과 넝쿨이 수풀을 이루고 갯버들과 물버들, 선버들이 짙은 녹음을 이루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소리가 푸른 고요를 뚫고 음률을 만들었다. 어디선가 멧돼지,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이 두두 튀어나올 것도 같았다. 더 깊숙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완사습지. 경남 사천시 곤명면 완사, 작팔, 구몰, 성방마을에 걸쳐 있다. 남강댐과 진양호의 배후습지로 전체 면적이 160만㎡다. 지난 5월 초 난생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거기엔 진양호로 흘러드는 완사천을 품고 거대한 원시림이 있었다. 낡은 시멘트길이 드문드문 끊어졌다 이어지고, 도랑 물길이 우거진 수풀 사이로 흐르고 있어 한때는 마을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개발행위가 제한된 덕분일까, 사람이 떠난 자리는 산토끼, 고라니 등 야생동물들의 터전이 되었고 멸종위기동물인 수달이 돌아왔다. 사람의 손과 발길이 닿지 않은 20여년의 시간이 가져다준 생태계 변화는 그저 신비로웠다.
완사습지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마을이었다. 물난리를 겪기도 했지만 대대로 논밭 농사에 기대어 살았고, 4일과 9일 오일장이 열리고, 완사천이나 덕천천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도 꽤 유명했다. 하루에도 몇 번 진주-하동을 잇는 경전선 비둘기호 열차가 완사역에 멈췄고, 아이들은 열차를 타고 인근 진주에 있는 학교에 가고 어른들은 더러 삯일을 하러 나갔다.
진주·사천 일대는 오래전부터 상습 침수피해 지역이었다. 1969년 남강댐 건립 후에도 큰 수해를 입자 10년에 걸쳐 댐 보강공사를 했다. 2000년 댐은 더 높아졌고 상부에 있는 인공호수 진양호는 더 넓어졌다. 주변 지역인 진주시 대평, 사평, 귀곡 등 여러 마을이 대부분 물속에 잠겼다. 주민들은 대대로 살던 마을을 비우고 이주단지로 떠났다. 사천시 완사마을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1999년께 주민들은 새로이 조성된 이주단지로 떠났다.
그즈음 사람들이 떠난 완사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잠시 간 적이 있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빈집들과 빈 기차역, 버려진 논밭들…. 누군가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가재도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빈 정미소에는 아직도 등겨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길고양이가 막다른 골목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등을 곧추세웠다. 곧 사라질 것들은 그대로 녹슬고 있었다. 그리고 옛 완사마을은 빠르게 잊혀갔다.
지난 4월, 이른바 ‘완사습지 벌목사건’이 발생했다. 담당기관에서는 완사천 하천정비사업이라 했다. 1001번 지방도와 접한 습지 일대에 대대적인 벌목이 이뤄졌고 원시림을 이룬 버드나무 군락지는 굴착기에 짓밟혔다. 완사습지는 며칠 만에 앙상하게 드러났다. 논란이 됐다. 수질 보존을 위한 정비사업이 오히려 상수원을 훼손하고 습지를 유린한 격이 됐다. 다행히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나서서 진상을 밝혔고, 주민들의 관심 밖에 있던 완사습지는 그 존재와 가치를 드러냈다. 완사습지의 발견이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동시에 개발행위에 따른 반성도 잇따른다.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과 가치에 집중하고 지역 습지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습지는 생명 다양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탄소를 머금고 기후를 안정화한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시대에 습지와 자연 보전은 또 다른 바이러스 사태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경남에는 지금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지역 습지를 발굴하고 보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남람사르환경재단과 국립생태원 습지센터가 조력자로 나섰다.
생태계 회복에는 그리 긴 시간과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완사습지를 보더라도 단지 보전이었다. 그대로 둔다는 것, 생태계가 서로 보듬어 품고 사는 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