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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외국어공립학교’를 만들자

등록 2006-02-07 18:16수정 2006-02-08 13:37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경제전망대
교육과 부동산은 온 국민의 관심사다. 이 문제에는 관여하는 행위자가 많은데, 그들은 상당한 정보에 입각하여 행동한다. 이런 게임에서는 새로운 균형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사교육,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통해서 교육과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공언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시간이 걸려도 좋은 공교육과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잘 작동되는 정책들을 마련하기 위해 나라 바깥의 이야기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최근 만난 칭다오의 ㄱ씨, 오클랜드의 ㄴ씨 등 동포들로부터 들은 교육 이야기다.

이민, 조기유학은 다양한 계층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자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지만,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ㄱ씨의 경우 한국에서 중소기업 상황이 좋았다면 굳이 이민을 결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50대 이후 자신의 삶의 모습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 새로운 선택을 했다.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 한국에 비해 크고, 그래서 자신과 자녀들에게 사업과 고용 기회가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리적, 문화적 거리도 중요했다. 중국에 살지만 뿌리는 고국에 있고, 세대를 연결하는 것은 그 뿌리라고 믿는다. 주입식 교육, 치열한 경쟁 때문에 중국의 교육 여건이 한국보다 꼭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어 공부에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하루에 노트 반 권을 베껴야 하는 숙제로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아들을 타이르고 있다.

경쟁이 없는 곳은 없다. 따뜻하고 비교적 여유 있게 생활하는 뉴질랜드에서도 선호하는 대학이나 전공으로 진학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ㄴ씨 얘기로는, 한국에서 온 학생들 사이에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고 한다. 경쟁이 싫어서 출국한 경우는 대부분 하위권으로 처질 수밖에 없다. 회화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적은 지역이 좋겠지만, 그런 지역은 대개 진학률이 높지 못하다고 한다.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작문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역시 많이 읽고 쓰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뉴질랜드에는 좋은 환경과 복지제도가 있지만, 제조업이 약하고 성장률이 높지 않아 고용문제가 걱정이다. 많은 동포들은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한국에서 직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잊지 않고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이민이나 유학을 통해 외국에서 교육받는 것과 국내에서 교육받는 것을 종합적으로 비교해보면,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서로 차별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의 공교육과 고등교육의 외국어 교육 능력에는 취약성이 있다. 대신 사교육기관은 비싸지만 경쟁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공교육과 고등교육의 취약성을 메우고 있다. 그러니 사교육, 조기유학, 영어공용화론만을 탓해서는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 이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공교육은 낯설고 외로운 곳에 닻을 내리려고 하는 개방과 개척정신으로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야 한다.

지금 실험 중인 ‘영어마을’을 더 확대하자. 많은 동포와 유학생 출신이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도록 문을 넓히자. 전국 여기저기에 ‘외국어공립학교’를 만들자. 원하는 사람은 1년쯤 거기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 시기가 되어 취학연령을 1년 낮출 때, ‘외국어공립학교’ 과정을 의무교육에 넣도록 준비하자. 작은 실천들이 쌓이다 보면, 개방적인 동아시아-한반도 경제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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