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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규 임대차 규제의 위험성

등록 2021-08-08 20:29수정 2021-08-09 02:39

최한수 l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임대료 통제만큼 정치인과 경제학자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큰 주제도 드물다. 경제학자들은 ‘도시를 망가뜨리는 두 가지 방법은 폭격과 임대료 통제’라는 과격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 반면 정치인들은 자주 임대료 통제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우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한 ‘임대차 3법’의 효과를 놓고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최근에는 치솟는 전셋값을 잡기 위해 신규 임대차계약을 추가로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의 적절성을 판단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임대차 3법의 지난 1년간의 공과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정부는 법 시행 이후 서울 아파트 기존 전세 매물의 5분의 4 정도가 5% 이내의 임대료 상승 조건으로 재계약되었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는 법 개정 효과의 일부일 뿐이다. 전체 효과를 가늠하려면 전체 임대차계약 중 법 개정의 혜택을 본 기존 계약 비중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이를 제시한 적이 없는데, 조세재정연구원 송경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최대 30% 수준이다. 결국 임대차 3법의 명암은 70%의 신규계약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 시장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 통계와의 비교를 위해 서울 아파트 중심으로 보자. 법 개정 1년 전 4.8억이었던 평균 전세가격은 1년 뒤 5.8억이 되었다. 케이비(KB) 전세가격지수 기준으로는 17% 정도 올랐는데 법 개정 1년 전 상승분이 총 3%임을 고려하면 지난 1년간의 상승이 얼마나 가파르게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거래량 또한 문제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법 개정 후 올해 6월까지 전세물량은 이전 1년 대비 13% 감소했다. 그리고 이러한 감소는 고스란히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계약자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요컨대 임대차 3법은 기존 전세가격의 안정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신규 전세가격의 상승과 전체 물량의 축소라는 부작용으로 인해 전체 임대차 시장 참여자의 후생을 악화시켰다.

혹자는 지난해의 전셋값 폭등을 금리인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법 개정 후 10개월 동안 전셋값이 17% 오르는 동안 놀랍게도 금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0.3%포인트 올랐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법 개정 전 40개월 동안 금리는 0.72%포인트 하락했으나 가격 상승폭은 5%로 안정적이었다. 만약 금리하락이 전셋값 상승을 부채질했다면 법 개정 후보다 그 이전에 더 많이 올라야 했다. 실제 송경호 박사의 연구는 금리효과를 통제한 뒤에도 임대차 3법이 전셋값 폭등의 주요 원인이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최근의 전세 대란은 신규 계약 탓이 크다. 법 개정 시점이 패닉바잉과 겹치면서 더 그러했다. 4년의 인상을 한번에 반영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러자 베를린처럼 신규 임대차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과연 여기는 문제가 없을까? 규제안 공개 후 1년 반 사이 규제가 없는 독일의 13개 도시와 비교하여 베를린의 규제 주택의 월세가 58% 낮아졌다. 하지만 동시에 베를린 내의 규제 외 주택의 월세는 그 도시들보다 9% 더 올랐고 규제 주택의 월세 매물은 55% 감소했으며 주택 가치는 12% 하락했다.

이는 비단 베를린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사 규제를 도입한 샌프란시스코나 뉴욕도 비슷하다. 임대료 규제는 현실에서 항상 예외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규제의 비대칭성은 주택시장을 이원화시킨다. 현재 거주자는 주거 안정의 혜택을 얻지만, 중장기적으로 신규주택 공급 감소와 주택 가치 하락이라는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런 면에서 임대료 규제는 미래 거주자들의 편익을 현재 거주자에게 이전시키는 성격을 갖는다. 사실 이것이 정치인들이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임대료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는 이유이다. 이들의 재선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주거안정이 중요한 가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임대료 규제가 그 효과적 수단인지는 의문이다. 특히 신규 임대차 규제는 지난해의 법 개정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지금은 제도의 정착과 보완에 주력할 시기이다. 주거안정은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용산공원 일부를 양질의 공공주택 개발에 사용하자는 강병원 의원의 법안을 여야 모두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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