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지난 4월 필넷(PILnet)이라는 국제 공익법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6~7월 사이에 아시아 최초로 공익변론에 관한 지역 차원의 온라인 강좌를 개설하는데 강사진에 합류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전략소송 세션을 맡아달라고 했다. 꿈꿔왔던 프로그램이었고 필넷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약 20년 전 공익변호사를 지망하는 한 사법연수생이 있었다. ‘꿈만 있을 뿐 가진 것도 아는 것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국내 인권변호사들을 쫓아다니고 외국 자료를 뒤졌다. 인터넷에서 필넷이 발간한 공익변론 매뉴얼, ‘공익 추구’(Pursuing the Public Interest)를 찾아냈을 때, 바로 이거다를 외쳤다. 이 매뉴얼을 교재로 몇몇 경험 많은 변호사들과 세미나를 하며 공익변호사의 기초를 다졌다.
‘같이 꿈꿀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꿈을 가지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꿈이 커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줄 사람, 꿈을 지키지 못할 때 꾸짖어줄 사람, 꿈을 버리지 말라고 토닥거려줄 사람, 그런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꿈이 허황된 것이라면, 마냥 꿈만 꾸고 있는 것이라면 혹은 꿈을 꾸며 현실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면 꿈에서 깨워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바로 지금 여기에.’
공익변호사가 됐다. 한 미국 대학의 지원을 받아 첫 해외출장을 가서 전세계 30여명의 변호사가 함께한 공익변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놀랍게도 주 교재가 필넷 매뉴얼이었다. 스스로의 선택에 기특해하며 이후에도 이어질 많은 인연들을 만들었다.
2015년 타이 방콕에서 필넷 포럼이 열렸다. 필넷의 설립자이자 매뉴얼 공저자인 에드윈 레코시 변호사를 만났는데 이 회의를 계기로 필넷을 떠난다고 했다. 짧은 퇴임사가 있었고, 그는 설립자 겸 지도자가 언제 어떻게 조직을 떠나야 하는가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필넷을 떠나자마자 함께하는 이들이 다양한 결합도를 가지는 유연한 구조의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한국을 방문한 그와 서로 개인과 조직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수다를 떠는 행복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필넷과의 교류는 이어졌다. 여러 한국 변호사들에게 필넷을 소개할 기회를 가졌고 몇몇은 직접 관련 포럼에 참석했다. 아태지역 난민인권 관련 활동을 함께 해왔던 활동가가 필넷 아시아사무소 대표가 됐다. 프로보노(사회적 약자 대상의 법률지원)와 관련해 필넷 관계자를 한국 행사에 초대하기도 했고, 한국의 공익법운동, 프로보노의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한 공동의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7월 드디어 약 50명의 인권변호사를 대상으로 아시아 공익변론 강좌 시리즈에서 강의를 했다. 전략소송에서의 고려 사항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국내 소송에서 해외 연기금 윤리위 진정에 이르기까지,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다양한 국내외 법적 대응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난민심사의 기준을 담은 난민인정지침 공개를 위해 유엔난민기구를 끌어들였던 사건, 일본 변호사들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국내 최초 승소 판결을 받아낸 난민 사건, 국제인권기준을 총망라하면서 국제노동기구 등의 권고를 얻어 법원을 압박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노조 설립 사건,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법적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 외국인 강사 에이즈 검사 강제 사건 등등을 다뤘다. 반응이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내 생각엔.
뻔한 얘기일 수 있다. 배웠던 이가 가르치는 이가 되었다는. 하지만 그 이상이 있었다고 우기고 싶다. 짜증 나는 일 가득한 2021년 여름 우리의 소중한 인연들을 되돌아보면 좋겠다. 강의의 마무리는 이러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어디선가는 모두 이방인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우리가 공동운명체임을 인정하고,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방인들, 특히 취약하고, 사회적으로 상처받고,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공통의 인식과 공감에 기초한 소통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유머와 열정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역사는 스스로 흐르지 않는다.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역사를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