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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군 부지, 주택 공급 또 하나의 대안

등록 2021-08-15 17:19수정 2021-08-16 02:07

[기고]

권일 ㅣ 한국교통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

우리나라 대도시에는 도시 내부와 주변 지역에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토지들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용도 폐기된 군사시설 용지이다. 군사시설 용지는 전국적으로 약 1200㎢, 수도권에만 450㎢가 있는데, 이 중 대규모 주택 공급이 가능한 땅도 꽤 있다. 일례로 2030년까지 통폐합되어 수명을 다하는 예비군훈련장이 전국에 160여곳 있고, 미군의 평택 이전에 따른 반환공여지역도 수도권에만 22곳이 있다. 이와 같은 군부대 이전 적지나 용도가 다한 군사시설 용지를 잘 활용하면 수도권에서만 약 3만호의 주택 공급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방안의 실현은 현행 제도상 문제로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군사시설을 활용한 사업은 ‘기부 대 양여’ 방식을 따른다. ‘기부 대 양여’ 사업은 국유재산법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대체시설로 제공하는 기부재산이 국가(국방부)로부터 양여받는 종전 군사시설 용지의 가치보다 높아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기부재산과 양여재산의 가치는 ‘국유재산 기부 대 양여 사업관리 지침’에 따르는데, 문제는 두 재산의 가치평가 기준이 다르고 불공정하다는 데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사업시행자가 기부하는 재산에 대해서는 토지매입과 시설설치에 들어간 원가만 인정하여 평가하고, 국가가 양여하는 재산의 경우 종전 군사시설 용도를 폐지하는 도시관리계획 변경이 완료되어 미래 개발이익이 모두 포함된 상태로 평가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국가가 기부받는 토지는 미개발된 현재 상태로 토지가치를 평가하고, 국가가 양여하는 토지는 현재 미개발 상태이지만 도로, 상하수도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모두 구비된 상태를 가정하여 평가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평가 방식이 국가에만 현저하게 유리하고 불공정하게 되어 있으니 사업시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는 상위법인 국유재산법에서 명시하는 ‘국가가 국유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할 때 지켜야 하는 주요한 원칙’인 “취득과 처분이 균형을 이루고”, “공공가치와 활용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우리나라 ‘기부 대 양여’ 사업은 국가가 처분하는 토지의 가치만을 극대화하는 데만 매몰되어 있다 보니, 군부대가 장기간 주둔해서 저개발된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원, 공공편의시설과 함께 주택을 공급하는 개발이 되지 못하고 사업성 위주의 민간개발만 양산되고 있다. 이와 달리 외국에선 군사시설 용지를 저렴하게 이전해줌으로써 저렴한 주택단지 개발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군사시설(미군이 주둔하다 이전한 시설을 개발한 슈투트가르트시 인근의 신도시인 샤른하우저 파크 개발 사례, 옛소련군이 주둔하다 이전한 포츠담시 인근의 보른슈테터펠트 개발 사례 등 다수)에 대하여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출자한 지방공사에 저렴하게 매각함으로써 저렴한 주택 공급이 가능하게 하였다. 일본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는데, 가시와노하시에 위치한 미군 이전 적지 일부를 정부가 시에 당시 시가로 매각하고, 시는 이 토지를 활용하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하여 공공개발사업(스마트시티 사업)을 추진하였다.

우리나라 국공유지 개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저렴한 주택 건설과 지역주민들에게 필요한 시설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유재산 기부 대 양여 사업관리 지침’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군사시설 이전에 따른 기부재산과 양여재산의 평가 시 국유재산법 제3조에 의거하여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변경하고, 군사시설 대체가 아니라 폐지 또는 통폐합을 통해 발생하는 유휴부지에 대해서는 토지보상법에 따른 현 상태 감정평가를 통해 취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사업시행자도 저렴하게 양여받은 재산에 대하여 개발원가 수준에서 토지 및 주택가격을 정하도록 하는 규정도 아울러 필요하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35조 3항에서 “국가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거권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군사시설 ‘기부 대 양여’ 사업과 관련한 법령 및 지침 개정은 주거권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정한 헌법 정신에도 부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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