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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신 반대론과 우주적 피해망상

등록 2021-08-16 16:39수정 2021-08-17 11:19

세상읽기

한승훈 |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세상은 왜 위험한가? 종교학자 조너선 Z. 스미스의 용어를 따르면,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상상력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위치지정적(locative)인 것이다. 이 세계관에 의하면 위기는 질서의 혼란에서 온다. 모든 것은 저마다 마땅한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거나, 성소수자의 인권을 인정하면 사회가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라 믿는 근본주의적 종교의 인식은 여기에 속한다. 반면 유토피아적(utopian) 세계관에 의하면 현재의 질서는 거짓된 것이다. 따라서 위험은 현재의 억압적 체제 그 자체에 있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 썼듯이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관점은 영적, 사회적 해방을 추구하는 문화적 실천 속에서 폭넓게 나타난다.

이렇게 말하면 유토피아적 세계관 쪽이 보다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세계관은 수많은 종교적, 유사과학적 음모론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정부나 권력 집단이 개개인의 체내에 마이크로칩을 심어서 시민을 통제, 감시하거나 심지어 정신과 신체를 조종하려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정보기술을 이용한 시민 감시는 조지 오웰이 상상한 ‘빅브러더’를 꿈꾸는 전제적인 권력자들이 바라 마지않는 일이다. 그러나 고작 반려동물 관리를 위해서나 사용되는 현재의 생체칩 기술로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 음모론을 신봉하는 종교 집단들은 이야말로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묵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표”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바코드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현재의 세계를 불신하는 인식은 공공보건을 위협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백신 반대 운동이다. 백신 반대론자들은 백신이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는 해롭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 백신을 맞게 하는 것은 “제약회사의 음모”이거나, 백신으로 “유전자를 변형”시켜 인류를 조종하려고 하는 사악한 세력의 책략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이런 주장은 지속적으로 퍼져나가며 방역 상황을 악화시켜왔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백신 거부론의 영향이 약한 지역에 속하지만, 종교인들을 비롯한 백신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온라인 공간에 울려 퍼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백신을 맞으면 자석이 몸에 붙는다거나, 좀비가 된다는 주장까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적극적으로 백신 반대를 외치는 이들 가운데에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만이 아니라 진보적 인사로 분류되는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백신 마피아의 국제적인 카르텔이라든지, 백신 맞은 사람과 접촉하면 유산을 한다는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다. 그러나 ‘좌파 백신 거부론’이 전제하고 있는 세계 인식에는 흥미가 있다. 백신 접종을 포함한 정부의 방역 정책을 전체주의적 통제와 동일시하는 논자들의 비평은 의학적 토론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 한편으로 그들의 언어는 급진적 생태주의나 문명비판의 논리와 많은 점에서 닮았다. 자본주의와 관료제, 근대과학이 구축한 현대 문명이 한계에 도달했으며 지구환경과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관점 말이다.

이성과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 사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의 일부로 지속되고 있다. 물론 문명의 위기에 대처하는 대안의 탐구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성, 과학, 근대가 아직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누군가 독점하고 있다는 주장은 대단히 의심스럽다. 백신을 비롯한 현대 의학에 한계가 있다고 하여 검증되지 않은 자연식품 섭취나 대체요법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과학은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형식의 세계관도 제공하지 않는,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지식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스미스가 “우주적 피해망상”(cosmic paranoia)이라고도 이른 유토피아적 세계관은 과학을 바탕으로 한 근대적 지식을 위치지정적 세계관이 강요하는 억압적인 질서와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기존의 지식체계와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 정신은 더 나은 세계로의 혁신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의심과 불신은 그 자체로는 정의가 아니다.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또 다른 기괴한 것들을 믿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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