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폐업한 상점의 내부가 공사로 인해 어질러져 있다. 연합뉴스
조형근 | 사회학자
지난주에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병원은 백신 대기자로 혼잡했지만 일처리가 체계적이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주사 놓는 간호사는 친절한 설명으로 불안감을 가라앉혀줬다. 1년 반 넘게 고생하는 의료진과 방역 종사자들이 참 고마웠다.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죄가 될 것 같은 날들이다. 이심전심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폐가 될까 불편을 감내하고 있지만, 이 시국에도 제 욕망만 앞세우는 이기주의자들이 있어서 사람들은 화가 난다. 지적이고 자유로운 이미지로 유명한 한 방송인의 최근 인스타그램 글이 화제가 됐다. 휴가 가는 이들, 대면 예배하는 교인들, 집회 시위하는 사람들을 지목하면서, 방역 지침 잘 지킨 나만 호구인 것 같다는 울분을 토로했다. 공감이 컸던 듯하다. 이해가 된다.
지난 7월3일의 민주노총 집회에서는 확진자 세 명이 나왔다. 금지된 집회였다. 총리가 유감 성명을 내고, 참가자 전원에게 검사 명령이 내려졌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 중대재해 근절, 최저임금 현실화 등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호소하는 집회였지만 비난 여론이 거셌다. 당국이 역학조사도 없이 감염경로를 집회로 단언하자 민주노총은 반발했다. 세 명은 한 사무실에서 일하며 같이 밥 먹는 동료였고, 확진 판정은 잠복기 2주가 다 된 7월16, 17일의 일이었다. 결국 감염경로는 집회가 아니라 식당으로 밝혀졌다. 그래 봐야 ‘민주노총 집회 확진자 세 명’만 기억에 남겠지만.
6월15일에는 택배노조의 집회와 파업이 있었고 확진자 두 명이 나왔다. 역시 금지된 집회였다. 왜 이 시국에 집회를 열었을까? 작년부터 지금까지 2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했다. 산재도 급증했다. 코로나19 이후 택배노동자들은 제 생명을 갈아서 우리의 생명줄이 되어왔다. 이들은 부당하게 강요되고 있는 분류업무만이라도 제외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지난 1월, 노사정 합의로 제외가 결정됐지만 사측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사이 노동자들은 또 죽어갔다. 6월의 집회와 파업 후에야 2차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30여명은 감염병예방법 등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기적인 택배노동자들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 한 상점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7월14일에는 전국자영업자비대위가 주최한 손실보상 요구 집회가 열렸다. 역시 금지됐다. 손실보상법 제정도 너무 늦었지만 소급적용 불가 방침은 기가 막혔다. 정부가 영업을 막았는데 보상이 없단다. 많은 정부들이 적극재정으로 국민의 피해보상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작년 재정적자가 주요 42개국 중 네번째로 작지만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쪽에 가깝다. 사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손실보상 전에 이미 문을 닫았다. 이기적인 자영업자들일까?
방역을 위해서 일부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반론이 있을 줄 안다. 작년 개신교 일각에서 주최한 광복절 집회에서 노 마스크에 음식물 취식 등 방역수칙 위반으로 적잖은 확진자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민주노총은 “백신 맞고 집회 참석”이 슬로건이었다. 전원 명단 작성, 체온 점검,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를 약속하고 지켰다. 4단계에서도 영화관과 공연장이, 술집과 식당이 기준에 맞춰 영업을 한다. 마스크 쓰고 거리두기 한 실외집회는 안 된다.
사실은 기본권과 이기심의 충돌이 아니라 기본권과 기본권의 충돌이다. 국민의 생명권, 보건권을 위해 신체의 자유, 영업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같은 기본권이 제한되고 있다. 물론 생명권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권 제한으로 생존과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이들도 있다. 대개 힘 약한 이들이다. 기본권 제한은 목적이 타당해도 최소한에 그치는 게 원칙이다. 당국은 코로나19 발발 이후 열 명 이상의 모든 집회를 금지했다. 4단계인 지금은 1인시위만 허용한다. 최소한의 제한 방법을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편의적인 일괄 금지일까? 인권위는 무조건 금지보다는 소통에 기반한 통제된 허용을 권고한 바 있다. 그쪽이 충돌도 막고 감염 위험도 낮출 것이다.
당국의 우려도, 대중의 비난도 이해되지만 늘 그렇듯 희생은 하층에 집중되고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8월19일에 발표된 통계청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재난 중에도 소득 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늘었다. 그 아래는 모두 줄었고, 하위 20%는 6.3%나 줄었다. 백화점 매출은 사상 최고라는데, 살려달라는 비명에는 이기심의 낙인이 찍힌다. 누가 이기주의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