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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선부론’은 끝났다 / 박민희

등록 2021-08-23 15:25수정 2021-08-23 15:41

지난 40년간 중국을 끌어온 것은 덩샤오핑의 “일부가 먼저 부자가 되라”는 ‘선부론’이었다.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이 점진적으로 사회 전체를 ‘공동 부유’하게 한다는 낙수효과가 전제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은 ‘사회주의’ 간판을 걸고 있지만, 지니계수 0.47의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 주도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주 ‘공동부유(共同富裕)’라는 새 깃발을 올렸다. 지난 18일 중국공산당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를 통해 “너무 높은 소득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고소득 계층과 기업이 사회에 더욱 많은 보답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덩샤오핑의 선부론 시대가 끝나고, 시진핑의 공동부유 시대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선언이다. 최근 중국 공산당이 IT 플랫폼 대기업, 사교육과 부동산 시장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내놓고, 음식배달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과 4대 보험 보장을 지시한 것은 그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중국공산당의 ‘공동부유’ 선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내년 말 3연임으로 장기집권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시진핑 주석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려는 정치적 포석, 미국과의 대결로 외부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내수시장을 강화해 지구전을 준비하려는 전략의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공산당이 수출과 국가 주도 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기존 성장모델로는 더 이상 경제 성장도, 사회 안정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빈부격차를 축소하고 중산층을 확대하기 위해 과감한 변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직 판단은 이르다. 중국이 실제로 어떤 구체적 정책을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우선 중국이 부동산 보유세와 상속세를 도입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가장 많은 억만장자가 있는 중국에 지금까지 부동산 보유세와 상속세가 없었다는 것은, 중국이 부익부 빈익빈에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는 ‘야만적 자본주의’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년 전 상하이와 충칭시가 부동산 보유세를 시범 도입했지만, 여전히 전국적으로는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번 발표에서 부유층과 기업의 기부 등 ‘3차 분배’를 강조했다. 그날 밤 중국 최대 IT 빅테크 기업 텐센트는 곧장 500억위안(약 9조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했다. 권력의 눈치에 민감한 중국 기업들의 거액 기부가 이어지겠지만, 실제로 균등한 분배를 향한 성장모델의 대전환이 실현될지, 아니면 정치적 동원과 구호에 그칠지는 두고봐야 한다. 시진핑 정부가 민간의 자율적 노동운동을 강하게 탄압하고 있는 가운데, 행정력에만 의존하는 정치적 선전에 그칠 수도 있다.

선부론은 끝났다는 시진핑 주석의 선언은,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낙수효과는 결코 작동한 적이 없다“면서 ‘부자 증세’를 통해 저소득층의 보육과 교육 등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과 닮았다. 미-중이 격렬하게 대립하지만, 시장과 자본의 논리만 추종해온 불평등한 성장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결론이 일치했다. 미-중 패권 경쟁의 승패도, 어느 쪽이 제대로 ‘공동부유’를 실현해 망가진 사회를 재건할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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