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락ㅣ산업팀장
“당신은 어느 정부를 위해 일하나요?”
탄핵 바람이 일기 시작한 2016년 가을. 박근혜 정부 마지막 예산(2017회계연도)안 발표 후 만난 재정 쪽 고위당국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자는 당시 예산안이 세수(총수입 기준)를 10조원 이상 과소 추계한 것으로 봤다. 다만 그 배경이 아리송해 그 질문을 던졌다. 단순히 임기 말에 재정건전성을 죄기 위함인지, 아니면 차기 정권에 ‘넉넉한 곳간’을 선물로 안기려는 포석이 깔린 것인지….
그 관료는 대선 후 박 정권의 뒤를 잇는 정당에 가입한 터라 ‘차기 정부 구애용’ 예산 편성이란 의구심은 빗나갔지만, 대규모 초과 세수가 발생해 재정건전성이 개선될 것이란 예측은 들어맞았다. 2017년 초과 세수는 16조원이며, 이에 힘입어 재정수지 흑자는 2007년 이후 최대치인 25조원(GDP 대비 흑자 비율 1.6%)에 이르렀다.
바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는 전 정부가 만든 ‘선물’을 마음껏 즐기는 듯 ‘2018년 예산’을 편성했다. “제대로 된 확장 재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문재인 정부 초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연씨는 한해 전 추경예산보다 5.5%(본예산 대비 7.1%) 더 많은 예산을 짰다. 정부는 경상성장률 전망값(4.6%)이나 한해 전 예산 증가율(2.9%)을 강조하며 ‘적극적 재정 정책 추진’이라고 자평했다.
2019년 봄. 2018회계연도 결산 자료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겼다. 장부엔 예산을 넉넉히 썼음에도 31조1천억원의 돈이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애초 정부 예상보다 세수가 20조원 가까이 더 들어와서였다. ‘2018년 예산’은 폭포수처럼 쏟아진 세수 덕택에 예산안 발표 당시 정부 자평과 달리 결과적으로 ‘긴축 예산’이 돼 버렸다. 예년보다 많이 썼지만 더 많이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재정 흑자는 30조원을 웃돌았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교체기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임기 첫해 21조원의 세수 결손을 마주해야 했다. 전임 정부가 세수를 과다 추계한 예산을 편성한 탓이었다. 한차례 ‘채무를 늘리고 세입은 줄이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음에도 2013년 말에는 돈이 없어 예산 집행을 못 하는 상황마저 초래됐다. 예산보다 세수가 적게 들어온 것을 뜻하는 ‘세수 펑크’는 3년 내리 이어졌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이명박 정부 때의 감세 정책과 그에 따라 세수 기반이 무너진 영향이 컸다. 박근혜 정부가 이념적 지향과 달리 집권 첫해부터 대대적인 소득세·법인세 공제 축소에 나선 건 이런 까닭에서였다.
새 정권 임기 첫해 예산을 전 정권이 편성하는 구조인 터라 정권 임기 마지막 해 예산 편성 기조는 차기 정부의 경제 운용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예산 편성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교체기와 박근혜-문재인 정권 교체기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결과를 낳을까. 차기 정부에 선물을 준 후자보다 부담을 준 전자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공산이 있어 보인다.
외관상 ‘2022년 예산안’은 최근 2년간(2020~2021년)의 강한 확장 재정 기조를 누그러뜨린 듯하다. 예산 규모는 올해 추경예산과 엇비슷한데다, 재정적자 규모도 올해보다 줄 것(90조원→56조원)으로 정부가 전망한 점에서는 그렇다. 차기 정부에 적자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예산 편성이라는 평가도 나옴 직하다.
우려가 드는 이유는 정부 예상대로 세수가 걷힐지 의문이 들어서다. 정부는 예산안에서 내년 세수가 올해보다 34조2천억원(6.7%, 세수 증가율) 더 많을 것으로 봤다. 이렇다 할 만한 소득·법인·부가가치세제 개편은 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2년 연속 경상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세수 증가가 이뤄진다는 얘기여서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차기 정부에 부담을 안기는 예산안은 아닌지 국회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