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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규제 포획 / 박현

등록 2021-09-26 14:56수정 2021-09-27 02:33

공무원은 60살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 뒤에는 공무원 연금이 지급된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복무하도록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고위직 공무원들은 퇴직 전후에 공공기관이나 민간회사의 대표 또는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른바 ‘낙하산’ 또는 ‘관피아’다. 공무원 때보다 보수도 훨씬 많으니 이런 관행은 해당 공무원에겐 큰 특혜다.

그런데 국민 전체에겐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공무원들은 거의 모든 산업 영역을 규율하는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 산업계와의 유착관계가 규제를 왜곡시킬 수 있는 탓이다. 낙하산으로 내려간 퇴직 공무원들은 현직에 있는 후배들을 통해 규제 입안과 집행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후배는 이런 로비뿐만 아니라 자신의 퇴직 후 자리를 고려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규제가 소비자 권익과 국민 경제의 건전한 질서 확립보다는 특정 산업계의 이익을 보장하는 쪽으로 치우칠 수가 있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규제 포획’이라 한다. 1971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가 ‘경제적 규제 이론’이란 논문에서 이를 이론화해 노벨경제학상까지 수상했다. 스티글러는 산업계는 규제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만 일반 시민 개개인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산업계에 우호적인 규제가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논문 요지는 이 한마디에 농축돼 있다. “일반적으로, 규제는 산업계에 의해 ‘획득’되며, 주로 산업계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고 작동된다.”

규제 포획이란 말이 최근 국내 판결문에 등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7일 우리은행의 파생결합펀드(DLF) 소송 관련 판결에서 금융회사 경영진이 과도한 이익 추구라는 탐욕을 부리고, ‘규제 포획’된 금융당국의 고위 관료들은 제대로 된 규제를 하지 못해 소비자들의 권익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금융위원회에는 현재 이례적으로 9개월 넘게 계류돼 있는 금융회사 제재 건이 수두룩하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관련 은행·증권사들과 암보험 미지급 관련 보험사 등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권에서는 금융회사들의 로비 때문에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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