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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왕(王)의 귀환 / 정남구

등록 2021-10-04 16:38수정 2021-10-05 02:43

중국 주나라 사람들은 왕을 하늘의 아들, 천자(天子)라 했다. 유교를 한나라의 국교로 만든 동중서는 ‘임금 왕(王)’ 자 풀이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세개의 가로획은 하늘, 사람, 땅을 뜻하며, 이 세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왕이다.”

중국 고대사를 서술한 <서경>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고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니, 그 가운데 진실로 총명한 자가 임금이 되고, 임금은 백성의 부모이다.”

“위대하신 상제께서 사람에게 치우침 없는 덕을 내려 주어 사람이 변치 않는 본성을 가지게 되었으니, 본성에 따라 바른길을 가도록 다스리는 사람이 임금이다.”

유교의 ‘임금관’을 잘 보여준다. 사실 이 대목들은 애초 <서경>에는 없던 것을 나중에 유학자들이 끼워 넣은 것으로 청나라 때 판명이 났다. ‘천명을 받은 왕=백성의 부모’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실 왕의 탄생 과정은 목가적이지 않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갑골문에 나타난 ‘왕’ 자는 도끼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도끼를 들고 전쟁을 지휘하며, “나를 따르지 않으면 처자식까지 다 죽이겠노라” 하던 게 왕이다.

<서경> 목야 편(이 부분은 위서가 아니다)에 은나라를 정벌하러 간 주 무왕이 목야의 들판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이 이렇게 그려져 있다. “왕이 왼손으로 황금 장식의 도끼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흰 깃발을 잡아 휘두르며….” 목야의 전투는 얼마나 치열했는지, 피가 내를 이루어 절굿공이가 떠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민주정은 그런 왕의 존재가 사라지며 시작된다. 왕이 형식적으로는 존재하더라도 실권이 소멸한 자리에 민주정이 세워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붕어’하면서 왕정이 사실상 막을 내렸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공화정’을 선포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은 막강하고, 사람들이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들며, 대통령 선거를 ‘왕을 뽑는 것’으로 여기는 서사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손바닥에 ‘왕’ 자를 쓴 채 텔레비전 토론회에 참여해온 것이 드러나 뒷말이 무성하다. 그 글자가 왜 거기 쓰여 있는지는 너무 뻔한 일이라, 씨익 한번 웃고 넘어가도 될 일 아닌가 싶다. 그래도 누가 써줬는지는 정말 궁금하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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