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를 마치고 이낙연 전 대표와 포옹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세상읽기] 신진욱ㅣ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여름에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이 본격화한 뒤로 다섯달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여야 간에, 또는 각 정당 후보들 간에 정치생명을 좌우할 만한 격전이 이어졌다.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이나 대장동 특혜 의혹 등은 모두 폭발력이 엄청나서 여차하면 누군가 아예 링에서 내려오게 만들 만한 이슈다. 권력투쟁은 원래 생사를 건 싸움이지만, 이런 파괴적 대결이 다른 모든 이슈를 압도한다는 게 이번 선거판의 특징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대선 후보가 이재명 후보로 결정되었지만 이것으로 게임이 끝난 것 같지 않다. 이낙연 후보 쪽의 불복이 얼마나 파장이 클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점은 후보가 결정된 뒤에도 여전히 ‘만일의 경우’라는 가정과 ‘플랜 비(B)’가 이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시나리오의 현실성 여부와 별개로, 그런 상상 자체가 여야 경쟁자의 전략에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고발 사주 의혹에 관한 사실관계 규명이 한창이던 시점에 대장동 이슈가 불거져 주춤해졌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잠재적으로 폭탄이다. 게다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하여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진행 중인 조사가 여러 건이어서,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 사이에서도 판정승이 아니라 기권승을 꿈꿔보게 하는 유혹이 될지 모른다.
이 시점에서 드는 생각은, 지난 다섯달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 남은 다섯달도 이렇게 지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다. 게임 자체를 끝낼 치명적 이슈들로 온 나라가 들썩이다가 내년 3월9일이 되면 대통령이 정해지고 권력이 이양되는 것이다. 민주정에서는 선거 때 국민들의 절망과 소망이 가장 많이 이야기되기 마련이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에 관한 얘기를 전혀 못 듣고 있다.
이런 인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내 모든 중앙지, 경제지, 지역신문이 대선 이슈를 다루면서 경제, 복지, 일자리, 실업, 북한, 외교 등에 관한 정책을 함께 보도한 빈도가 지난 경선 기간에 얼마나 늘었는지 분석해봤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대선 관련 정책 이슈 보도는 몇몇 후보의 출마 선언일과 한두차례 토론회 때만 반짝했고, 그 외의 모든 시기 동안 전혀 증가한 흔적이 없다.
온라인 지형을 보기 위해 네이버, 다음, 구글에서 6월부터 대선을 언급한 모든 텍스트를 분석해봤다. 결과는 언론 보도와 같았다. 빈도 상위 단어엔 ‘검찰’, ‘조사’, ‘부정’, ‘지지율’ 같은 것만 있고 일자리, 실업, 격차, 불평등, 공정, 비정규, 청년 등 평소 요란하던 모든 이슈가 뒤로 밀려났다. 주요 주제를 추출해보니 민주당 경선, 국민의힘 경선, 선거 부정, 유권자 지지율 등이 큰 군집들을 형성했고 정책 주제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치란, 선거란 원래 그런 것일까? 물론 선거는 정당과 후보의 정치생명이 달린 사안이며, 함께하는 많은 사람의 이권과 열정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익 때문이든 신념과 열정 때문이든, 무조건 이겨야 하는 시합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수의 이익, 신념, 열정과 하나가 되는지 여부에 따라, 권력의 정당성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지금 얼마나 많은 유권자의 가슴이 뛰고 있는가?
한국갤럽의 9월 첫째 주 조사에서 ‘대통령감’을 묻는 말에 응답자의 32%가 아무도 택하지 않았다. 30대는 40%, 20대는 50%가 대통령감이 없다고 답했다. 10월 첫째 주 조사에서도 여전히 20대의 49%가 대통령감으로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5년 전에 이들은 이렇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어떤 후보에 대한 확신, 즉 긍정적 열정이 이렇게 약한 선거는 2007년 대선이 유일했던 것 같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총 유효투표 중 48.7%를 얻어 2위 정동영 후보와 22.6%라는 역대 최대 격차로 당선됐다. 하지만 63%의 투표율과 총 유권자 중 30.7% 득표율은 역대 최저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3개월 만에 국정 수행 긍정률이 10%대로 추락했다.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누군가가 당선되지 않게 하려는 부정적 열정은 강해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은 대통령’을 한번쯤 기대해보게 되는 그런 승리가 될 것인가다. 그것이 다음 5년의 국정 수행과 정치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은 다섯달, 달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