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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국 주민운동, 화려하지 않아 다행인 역사

등록 2021-11-24 17:50수정 2021-11-25 02:32

[세상읽기]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번주 한국 주민운동 50주년을 맞아 ‘전환의 시대, 가난·공동체·생명의 미래’를 주제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1970년대 본격적인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광주대단지 사건 같은 대형 참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1971년 9월 도시 빈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가 발족했다. 연세대 부설 도시문제연구소에서 사울 알린스키의 주민조직화 방법론을 배운 뒤 현장에 파견된 훈련생들을 필두로 수많은 성직자, 대학생, 가난한 사람들이 강제 철거에 맞서고, 일상에서 함께 생존을 도모하고, 국내외 사회운동과 연대한 지 50년이 지났다. 그사이 빈민에서 주민으로, ‘달동네’에서 일반 지역으로 운동의 주체와 공간이 확장되면서, 이제는 종래의 빈민운동 대신 주민운동, 또는 간단히 ‘시오’(CO·Community Organization)가 통용된다.

반세기의 운동을 한 단락으로 소개하겠다고 과욕을 부린 것은, 이 운동을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기 때문이다. 1980년대 과학적 변혁론의 근간이었던 노동운동과 달리, 빈민운동은 늘 주변부에 머물렀다. 지식인과 민중을 구분하고, 후자를 사회과학적 인식 대상으로 논하던 시기에 판자촌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다투고, 십시일반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불의가 거부한 인간성”(파울루 프레이리)을 되찾으려 했던 노력은 거대 투쟁의 서사에 온전히 포함되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어 민주화운동 세대가 ‘주류’로 부상했다고 하나, 주민운동 출신 인사가 정치권에 등장한 사례는 제정구, 김혜경(전 민주노동당 대표)씨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젊은 세대에게 주민운동은 더욱 낯설다. 몇년 전 한국주민운동교육원에서 발간한 책을 대학원 수업에서 읽었을 때, 학생들은 불편함을 내비쳤다. 조직화, 의식화 같은 표현들이 주민의 역량 ‘부족’이나 활동가-주민의 위계를 당연시하는 게 아닌가, 안정된 주거의 꿈을 접은 채 부단히 이동 중인 청년들에게 마을은 가닿기 힘든 단어가 아닌가, 정부 복지예산이 급증하고 정책도 많아진 시기에 활동가와 복지사의 차이란 뭔가, 결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을 ‘주민’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이 솟구쳤다. 1980년대 허병섭 목사는 지식인이 제 언어로 민중을 포로로 만들고 지적 욕구를 채우기 급급하다며 일침을 놓았지만, 학생들은 ‘의식화’에 깃든 의도성 자체에 거부감을 보였다. 반감은 요사이 더욱 심해졌다. 당신들의 유토피아를 내게 강요하지 말라,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계몽의 시대는 끝났다는 경고를 수시로 접한다.

하지만 공동체의 꿈은 의외로 질겨서, 좀 더 유연하고 느슨한 형태의 결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비혼 여성에서 스타트업 준비생까지,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다양한 청년들이 서로 모이고 함께 머문다. 상호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자율적인 자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가 흥미롭다. 하지만 공통의 관심사에 기반한 결속을 자연스럽게 치부하는 경향은 개인의 취향이나 열망도 교육을 통한 성취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곧잘 잊게 한다.

조직화·의식화 같은 ‘불온한’ 계몽의 언어들은 주민운동의 실천을 돌아보자면 거창한 게 아니었다. 한겨울 노숙하던 시절에 활동가들이 건넨 차 한잔을 마신 기억, 강제 철거 협박에 넋 놓고 짐을 싸다 세입자 ‘권리’란 단어를 우연히 접한 순간이 오랜 운동의 시작이었다. 40여년 전 제정구씨와 함께 경기도 시흥에서 철거민 집단 이주지를 만드는 데 헌신했던 미국인 정일우 신부는 “찐한 비빔밥” 같은 공동체가 생기게끔 사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시비 걸고, 패가 갈리고, 의심하고 트집 잡는 일상을 “진솔한 비빔 재료”라 부르며 주민들과 뒤엉켰다.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은 의식화·조직화 외부에 놓여 있지 않다. 시장이 섭리고 경쟁이 본성이라는 믿음을 설파하는 게 자본주의 의식화라면, 나는 역사에서, 다른 장소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의식화에 여전히 눈길이 간다. 물질적 빈곤뿐 아니라 실존의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 주민운동 50주년은 아시아 슬럼 지역 조직가들과 온라인 만남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운동의 사업화와 노령화, 민관 파트너십의 함정 등 10년 전 행사에서 등장했던 고민이 어떤 성찰과 대안을 이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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