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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세금, ‘폭탄’과 ‘구제’의 메타포 / 안영춘

등록 2021-11-28 18:02수정 2021-11-29 02:31

‘종부세 폭탄’이라는 은유의 폭탄이 연쇄폭발하고 있다. 상위 2%만 고지서를 구경할 수 있다는 노블레스(고귀)한 세금이 전쟁이나 테러를 연상시키는 표현과 결합해 일으키는 위력은 대단하다. 최근 <와이티엔>(YTN)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종부세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긍정적 의견보다 13.9%포인트 높았다. 이런 여론 지형은 장기간 유지돼왔다. ‘유지+강화’ 의견이 52.3%로 높게 나타난 <한겨레>의 조사 결과(11월25~26일)가 여론 변화의 신호인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세금 폭탄’은 우리 귀에 딱지가 앉은 표현이지만, 영어(‘tax bomb’)로 구글링해보면 의외로 희소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팔차니의 세금 폭탄>(Falciani's Tax Bomb, 한국어 제목 ‘스위스 비밀계좌를 팝니다’) 정도다. 여기서 ‘세금 폭탄’은 에르베 팔차니라는 은행원이 2008년 스위스 은행의 30만개가 넘는 비밀계좌에 돈을 감춰둔 이들의 정보를 폭로해 거액의 세금을 물게 한 걸 빗댄 것이다. 탈세범에 대한 조롱이지,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니다.

‘세금 폭탄’은 ‘세금 구제’(tax relief)를 참조해 한국의 보수가 만들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나익주,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거룩한 느낌마저 주는 ‘세금 구제’는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개인소득세 최고 세율을 70%에서 28%로, 법인세율을 48%에서 34%로 크게 내리면서 ‘세금 인하’(tax cut)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상속세(estate tax)도 ‘사망세’(death tax)로 바꿔서 부른다. 둘 다 치밀한 전략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폭탄’이든 ‘구제’든, 세금은 악마화되고 과세 대상은 무고한 희생자가 된다. 또한 그런 세금에 맞서 싸우는 건 영웅적 행위로 표상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유명한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이 강조하는 것도 이런 개념적 은유의 막강한 이미지 구성력이다. 하위 98% 국민 가운데 상당수가 상위 2%에 부과된 종부세를 부당하게 여기게 되는 원인 중 하나다. “세금은 폭탄이 아니다”라고 항변해봐야 프레임만 강화할 뿐이다.

레이코프의 대안은 이렇다. “세금은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공동자산이다.” ‘폭탄’과 ‘구제’의 프레임에 직관적으로 맞설 만한 대안인가.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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